기도 합시다.


저희에 대한 자비와 사랑으로 넘치시는 하느님, 영광 드립니다. 흠숭 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성령이여, 오소서. 이 홈페이지와 이 홈페이지를 접속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여시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자비의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 온 인류를 당신께 지금 봉헌하오며, 성체 안에 실제로 현존하시는 당신 예수님께도 봉헌 하오니, 당신께로부터 멀리 떨어진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이 홈페이지를 통하여 당신의 음성이 그들의 영혼 깊은 곳 까지 들려, 

그 안에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이 홈페이지와 온 인류를 위한 예수성심과 성모 성심의 지향을 위하여 비나이다. 

영광과 감사와 흠숭 받으소서. 이제로부터 영원히.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카톨릭 교회를 성당 또는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신교에서는 교회를 예배당 또는 집회소라고 부르지요. 카톨릭 교회에서 성전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하느님께 예배드리고 흠숭 드리고 기도하는 것 이외 실제로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피와 살과 신성과 인성을 가지시고 그 교회 안에 현존하시기 때문에 성전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축성된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이 실제로 감실 안에 계십니다.  미사 중에 사제가 밀떡 또는 빵과 술을,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시 성체성사를 제정하실 때 사용하신 말씀, ‘이는 내 몸이요 이는 내 피라’ 라는 말씀으로 축성하실 때 밀떡은 예수님의 살로, 술은 예수님의 피로 변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피와 살과 신성과 인성을 가지시고 우리 가운데 실제로 현존하시는 예수님이 감실 안에 계시는 겁니다.  이러한 예수님이 감실 안에 계시지 않는다면 카톨릭 성당도 신교와 다름없이 기도하는 집, 하느님을 예배하는 집에 불과 한  것입니다. 감실 안에 성체, 예수님의 현존의 중요성을 우리는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이를 돕고자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로 예를 들어 알아봅니다.

  


  한 신부님이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의 실체에 대해서 의심하게 되셨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7살짜리 아이가 엄마와 함께 미사참례 하러 왔는데 사제가 성체를 축성하시는데 막 소리 지르면서 “엄마 저 애기 누구야?” 하고 그러기에 그 때는 성탄 구유가 만들어져 있어서 구유의 아기를 얘기하는 줄 알고 조용히 가만히 있으라고 미사 끝나면 데리고 갈테니 조용히 있으라고 해도 계속해서 “아니 저 애기가 누구야?” 하고 한 2~3분 동안 계속 그래서 그 엄마가 신부님께 말씀드렸답니다. 하루는 신부님께서 그 아이 앞에 성체를 세 개를 가지고 나오셨답니다. 세 개 중에 두 개는 축성하신 것이고 하나는 밀떡, 축성하지 않은 밀떡이었습니다. 세 개를 가지고 나오니까 그 애가 거기서 펄펄 뛰면서 바로 이 애기라고 하면서 두 성체를 가리키고 그리고 하나는 아기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신부님께서 그 성체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시고 환속하려는 마음을 바꾸셨답니다.


  구라파에서 4세기 때 일어난 일인데 애들한테 큰 성체를 분배하는 풍습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한 애가 학교에 갔다 오면서 성체를 모시려고 성당을 들렀다가 집에 좀 늦게 갔답니다. 그런데 그 집안이 유태인 집안이었답니다. 아이가 늦게 들어오니까 아버지가 왜 늦게 왔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이 아이는 성체를 모시기 위해서 성당에 갔다 지금 왔다고 했더니 그 아버지가 노발대발 하면서, (당시 유태인들이 천주교 신자를 많이 미워했지요), 이 아버지가 그 당시에 안경 만들고 유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유리를 녹이는 큰 난로가 있었답니다. 홧김에 유리를 녹이는 큰 난로 속에 아이를 집어 던졌답니다. 집어 던지고서는 아버지는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가 울면서 사흘 동안 찾아다녔답니다. 그래도 찾을 수가 없었는데 사흘 째 되던 날 불이 활활 타고 있는 큰 난로 옆을 지나고 있었는데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나더랍니다. 깜짝 놀라서 들어보니 불길이 활활 타는 그 속에서 자기를 부르는 아들 소리였답니다. 문을 열어보니 자기 아들이 태연스럽게 쪼그리고 앉아 있더랍니다. 그 불속에 하나도 타지 않고 나와서 하는 얘기가 자기 아버지가 그랬다는 소리를 하면서 자주색 옷을 입은 여자가 계속해서 자기 주위를 돌면서 물을 뿌리고 있었답니다. 사흘 동안 먹을 음식도 갖다 주었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그 여자가 누구인지도 몰랐는데, 하루는 어느 성당을 지나가는데 괜히 그 성당에 들어가고 싶더랍니다. 성당에 들어갔더니 그 여인과 똑같은 그 성모님의 상이 있었답니다. 그 아이가 성체를 모셨기 때문에 불 속에 넣어도 타지 않았던 겁니다.


  또 아셔야하는 건 '모령성체' 에 관한 것입니다. 지금 성모님께서는 부르짖고 다니십니다. “이제 그만 됐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너무 모령성체가 심하기 때문에 이제는 모령성체를 그치라고 호소하고 다니십니다. 여기에 대해서 한 가지 실제 예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지나가는 얘기가 아니고 성인전이나 미국에서는 교리 선생님을 위한 두꺼운 책이 나왔습니다. 거기에 그 실화가 실려 있습니다.


  이 사람이 헝가리 사람인데 아주 귀족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잘 살았고 너무너무 효자였기 때문에 이 사람이 성인으로 알려졌습니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뒤에 자기가 은수자가 되기 위해서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는 자기는 사막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막에 들어가서 기도생활 뿐만이 아니라 아주 극기를 하고 보속을 하고 여러 가지 아주 심한 중노동을 많이 하셨습니다. 보속으로요. 그 주위에서는 다 이 사람이 성인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죄는 무슨 죄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머리에 순간적으로 떠올라서 죄를 범하셨습니다. 대죄였나 봅니다. 그런데 그 대죄를 꼭 고해성사를 통해서 사함을 받아야 하는데 자기 고해 신부님이 그것을 알면 실망하시고, 주위에 사람들에게 자기가 성인으로 알려졌는데, 여기에 대한 자기의 자애심이라 그럴까요. 그것 때문에 고해성사를 하지 않고 모령성체를 계속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났답니다. 천사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그 사람이 고해성사를 해야 된다는 필요성을 강조하셨답니다. 그래도 자기가 고해성사를 하면 고해신부가 아시게 될까봐 못하고 그 대신 자기가 결심을 하고 더 고행을 하기 위해서 더 죽도록 고행을 하기 위해서 수도원에 들어갔답니다. 수도원에 들어가서 얼마나 고행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수도원에서도 이 사람을 성인으로 인정했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죽었는데 이 수사들이 죽으면 그 수도원 내에 묘지가 따로 있습니다. 거기에 매장을 했는데 3일 째 계속해서 시체가 밖으로 나와 있더랍니다. 그래서 원장 신부님께서 가셔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네가 왜 여기 와서 그러고 있는지 얘기를 하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송장이 얘기를 하더랍니다. 지금 제가 말씀드린 그 과거 얘기를 더래요. “저는 지금 이 수도원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를 다른 데로 가져가 묻어주세요. 제 몸을 보십시오.” 하는 순간 그 몸이 시뻘건 불에 훨훨 타면서 지금 자기는 지옥에서 이 벌을 받고 있다고 하더랍니다. 모령성체가 그렇게 무섭습니다. 모령성체 할 때마다 대죄를 짓게 됩니다. 그런 은수자, 성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고행을 하고 극기를 했지만 한 가지 대죄를 고백하지 않고 성체를 모독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그 성체를 모독했기 때문에 결국은 지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이 대죄 상태에서 성체를 모셨는데 즉시 돌로 변했답니다.  또 한 사람은 대죄 상태에서 성체를 모셨는데 손에 닿자마자 없어지고 재만 조금 남았답니다. 어떤 사람도 장님이 됐습니다. 그래서 아주 통회하고 용서 청하고 난후 얼마 만에 다시 눈이 열렸답니다. 묘령성체, 모령고해란 것은 무섭습니다. 모령고해는 자기가 죄가 있는 것을 일부러 감추고 안하는 것입니다.


 이런 예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아이가 어느 날 성체를 모시고는 들어오자마자 바닥에서 쓰러져 버렸답니다. 성체를 모시고 들어오면서 말입니다. 집이 가까우니까 집에 데려가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의식을 잃고 있었답니다. 신부님도 가셔서 기도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더랍니다. 얼마 후에 눈을 잠깐 뜨면서 하는 얘기가 자기가 죄를 지었는데 그것이 부끄럽고 두려워서 자기가 고해를 하면서도 그것은 고해를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께서 네가 지금 무조건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고 고해성사만 보면 모든 것이 사해질테니 고해성사를 하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런데 그는 안하겠다고 하면서 그냥 숨이 끊어졌답니다. 악의 힘이 모령성체나 모령고해를 할 때는 사람을 지옥으로 이끄는 것은 절망을 통해서입니다. 이 예가 굉장히 많습니다. 고해성사를 통해서 자기가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신뢰를 안 한겁니다. 나는 그것을 이렇게 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용서를 안 해주셔, 이런 절망 때문에 고해성사를 보지 않고 죽었습니다. 그러면 어디로 갔겠습니까?


  그리고 또 한사람 여자인데요. 자기가 죄를 짓고 모령고해를 하고 묘령성체를 계속해서 했습니다. 성체를 계속해서 모셨습니다. 침대에서 계속 3년 동안 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환시를 봤답니다. 자기를 위해서 마련된 지옥을 보았답니다. 자기 언니를 좀 불러달라고 해서 자기 언니가 갔더니 그 얘기를 하더랍니다. 이 언니가 깜짝 놀라 신부님께 가서 얘기를 드렸더니 신부님을 오셔서 3일 동안을 밤낮으로 설득을 했답니다. 자기가 어떤 죄를 지었는데 너무 부끄럽고 두려워서 고해를 하지 않고 숨겨왔답니다. 그 동안에 모령성체를 했답니다. 자기가 갈 그 지옥에 있는 자기를 보았다고 너무 무섭고 끔찍하기 때문에 자기 언니를 부른 겁니다. 신부님이 가셔서 3일 동안 설득을 시킨다고 애를 쓰셨답니다. 어떤 죄를 몇  천 번 지었다 해도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용서만 청하고 통회만 하면 다 용서해 주시니까 고해성사를 하라고요. 그런데도 자기는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졌답니다. 이것이 절망, 절망을 통해서입니다. 그래서 모령성체 모령고해는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어느 사람이 약 17세~18세 때에 큰 죄를 범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해성사를 하기가 부끄럽고 해서 고해성사를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생각하기에 그 대신 내가 일생을 하느님을 위해서 많은 고행을 하고 내 일생을 그 보속으로 살아야겠다하고 수녀원에 들어갔습니다. 수녀원에 들어갔는데 그 공동체에서 볼 때 성녀 비슷하게 잘 살았다고 합니다. 그 수도원 원장도 했습니다. 그리고 죽었습니다. 죽은 후에 얼마 안 되어서 불길 화염으로 싸여서 어느 수녀에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고해성사를 볼 때는 우선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자기가 잘못한 것을 통회하고 그 죄를 다시는 짓지 않겠다는 결심이 있어야 됩니다. 물론 우리의 나약함 때문에 또 쓰러지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고해성사를 볼 때는 자기가 그 죄를 다시는 범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하느님의 용서를 청해야 됩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사제님께 얼버무려서 사제님이 이해 못하시게, 사제님께 부끄러우니까 이해 못하게 얼버무려서 고해성사를 하고 그냥 나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실오라기보다도 가는 생각까지 읽으시는 예수님께서 우리가 범죄 할 때 거기서 그대로 보고 계신 것입니다. 그대로 보고 계신 그분을 어떻게 속입니까? 


고해성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사제님께 죄를 고백했어도 하느님께 용서를 받지 못합니다.  그뜻은 대죄를 용서받지 않고 성체를 모시면 모령성체가 됩니다.  고백소에서는 속이지 말고 지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함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주어진 보속을 해야 죄의 용서를 받게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