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훈의 말씀 (십자가 성 요한의 말씀 - 성화와 성상)

성화와 성상들에 관계되는 것이라면 숱한 허영과 헛된 기쁨이 생길 수 있다.

거룩한 예절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것이고 의지를 신심으로 이끌기 위해 대단히 필요한 것이어서 자모이신 교회가 시인하고 사용하는 것이다. 그럼으로 이것들은 항상 우리의 미지근함을 깨우기 위해서 사용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성화와 성상들이 나타내는 내용에것에서가 아니라 그림 자체와 그 것들의 꾸밈새을 더 좋아한다.

교회는 두 가지 근본적인 목적을 위해 성상들의 사용을 허락했다. 말하자면, 하나는 성화에 그려진 성인들을 공경하기 위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성화들을 통하여 의지를 움직이어 성인들께 신심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다. 이런 것에 쓰인다면 유익한 것들이며, 이들에 대한 사용 역시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아주 적합하고 생생하게 만들어졌고 의지를 더욱 더 신심으로 움직여 주는 것들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것에 눈길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가치나 제작과정에 대한 호기심과 그 장식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내적인 신심이 영적으로 보이는 성인에게 직접 향해야 하고, 단지 동기로만 쓰이게 되는 그 성상을 즉시 잊어버려야 한다. 내적인 신심을 외적인 호기심과 장식에게 쏟아 붓는다면 감각이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방식으로 의지의 기쁨과 사랑이 하느님께 향하기보다 거기에 머물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성상들을 수집하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수집한 것들은 감각의 기쁨을 주기 위하여서다. 이런 사람들은 마음의 참된 신심이 라고는 거의 없다. 이들은 마치 어떤 사람들이 신상을 가져갔기 때문에 자기 집에서 나가면서 소리를 쳤던 미가가 자기 우상들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대단한 집착과 같은 집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은 근본적으론 보이지 않는 것에 자기신심을 두며, 성상들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도 않고 잘 이용하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더욱 하느님께 다가가게 하는 어떤 방법적인 것들과 동기들까지 빼앗아간다 할지라고 고요하게 머물 수 있다. 영혼의 완덕은 동기들에 대한 집착과 요구에서보다 이 동기들이 없어진 상태에서 더욱 고요함과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영혼이 성화나 그 동기들에 더욱 집착을 가지게 되면 가질수록 자기 신심과 기도가 하느님께 올라가는 것이 덜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즉 이것들에 대한 애착을 갖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성화나 성상은 다만 도움을 주기 위하여 사용되는 것에 불과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