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예수님의 말씀)

‘관상은 기도나 묵상처럼 어떤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계단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디딤판이다. 그리고 하느님과 일치하는 곳이다. 성령께서는 이 특별 은사인 관상의 은사를 절대로 아무에게나 주시지 않으시고, 다만 죄에서 깨끗이 정화되고 윤리적 덕들이 튼튼하게 수련된 영혼들에게만 내려주신다.’

관상에서 두 번째 장애물(십자가 성 요한의 말씀)

악마는, 영혼이 그윽한 고독 속에 있을 때, 영혼은 하느님과 더 깊은 일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제 자기가 손을 쓰기가 힘든 것을 알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영혼을 그 그윽한 침묵과 고독에 있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그 안에서 밖으로 끌어내려 유혹한다.

악마는 고독을 문란케 하면서, 영혼을 그 고독과 침묵에서 빼내고자, 어떤 것 그 자체는 좋은 것이나 감각적인 것으로 이성을 흐리게 한다. 목적은 영혼을 감각적으로 자극하여 감각적으로 행동하게 하여 분심을 일으키고 깊은 침묵의 고독과 잠심을 방해한다.

악마는 영혼이 ‘무’(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독과 고요의 침묵 속에 있는 것) 보다 덜 중요한 것을 미끼로 사용하여, 성령께서 놀라운 일을 하시는 고독과 깊은 침묵 속에서 영혼을 밖으로 나오게 유혹한다. 그래서 감각적인 생활로 돌아가게 하여, 감각적으로 조금씩 맛을 느끼게 만든다. 그러면 이 영혼은 이제 하느님과의 관계나 하느님께 대한 것에 예민하던 것이, 점점 둔해지고, 그 다음에는 감각적인 맛이나 욕에 더 끌리면서 자신도 의식 못하게 이제 하느님께 대한 것이나 기도나 신심행위에 분심이 많이 들고, 피상적이나 기계적이고 습관적인 외부적 활동같이 반복한다.

관상의 부르심을 받을 때는 감각의 세계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초보자들은 이 감각을 통하여 하느님께 가나 이 숭고한 관상에로 부름을 받은 이들은 이것을 버려야 할 때이다. 하느님께서 이 영혼 안에서 집을 지으시고 계시니, 모든 감각의 맛과 욕에서 완전히 이탈하고, 깊은 내적 고요 속에 머물러라.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그분만을 바라보고, 네 안에 평화와 고요함을 깨트리지 말고 ‘무’의 상태에서 머물러 있어라. 그래야만 하느님께서 그 영혼 안에 들어오시어, 아무 방해 없이 당신 계획대로 그 영혼 안에 당신의 집을 지으실 수 있다.

이 거룩한 이탈과 고요와 고독 속에 있을 때, 그 순간은 깨닫지 못하나, 하느님이 이때 영혼 안에 이룩하시는 것은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대단히 큰 가치가 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불꽃이 영혼 깊숙한 곳에서 타오른다. 보통 기도나 묵상하여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느님을 소유하는 것은, 영혼과 하느님과의 약혼 관계(하느님께서 가끔 방문하시고 선물을 내려 주심)이고, 관상은 하느님과의 일치가 이루어지는 하느님과의 결혼과 마찬가지다. 이 관상에서 하느님께로부터 받는 은총은 측량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 것들이다.  

관상에서는 하느님께서 주부 적으로 주입 시켜주신다. 우리 영혼은 고요 속에서 텅 비우고 있을 때, 하느님께서 초자연적 방법으로 사랑과 빛을 불붙게 하여 주신다. ‘의지’가 ‘이해’와 상관없이 사랑하게 되고 사랑의 열까지 주신다. 또 인간의 ‘지성’의 작용 없이 주입시켜 주시는 빛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의지는 관상을 하기 전 보다 더 아는 것도 없고 더 이해하는 것도 없는데도, 사랑에 불타오르거나 감동되어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전 보다 더 완전히 불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