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저의 특이한 하느님과의 의사소통 수단에 대해 소개할까 합니다.

저는 지난 날 오랜 냉담으로 많은 죄를 저질러 왔기 때문에 나의 필요에 의해 다시 하느님을 찾은 후에도 아주 큰 불의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처음엔 하느님만 믿고 성당에 나가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것을 기대하였으나 정화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믿음생활이란 내 위주로 하느님께 이것저것을 요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내가 요구하는 기도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이런 저런 불의 고통들이 엄습해왔을 때 저는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예전처럼 나의 능력과 지혜로 빠져나오려고 했으나 점점 더 깊은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자 저는 왜 하느님께서 성당도 이만하면 잘 나가고 나름대로 착한 것 같은데 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까 이상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너무 막바지에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 외에는 달리 매달릴 곳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은총이 많다는 데 문제가 잘 해결된다는 용(?)한데는 다 찾아다니고 좋다는 기도는 다 해보고 조상을 위한 미사나 가계치유 등등도 다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죽음과도 같은 고통은 점점 더할 뿐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만난 것이 98년 박 선생님 강의와 피정이었습니다.  그간은 고통을 없애기 위해 신앙생활을 해왔는데 이 피정은 그런 차원이 아니라 회개가 중요하고 주위의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이 테이프를 만나지 않았다면 저는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끔직한 고통 앞에서 죽음을 선택하였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니 고통을 겪는 것도 더욱 굳세어지고 수월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상의 생활 속에서 내 뜻 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는 습관도 몸에 배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밴 나쁜 근성들과 죄가 불쑥 불쑥 올라와 나를 괴롭게 하고 때로는 유혹에도 넘어갔습니다. 조금 형편이 나아지고 편해질라치면 옛 세속생활이 그리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넘어지고 회개하기를 반복하면서 저에게는 나름대로 하느님을 설득(?)하고 감동시키는 방법이 생겼습니다. 바로 욕 끊기와 희생을 바치는 방법입니다.

건강문제와 집안문제로 몇 년을 계절 바뀌는 것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하루하루 시달리며 살다가 완전히 벼랑 끝에 몰리는 최악의 상황이 올 때마다 십자가 앞에 두고 정신 차리며 다짐을 했습니다.

“주님, 제가 또 나태하게 지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이번에 이런 악습과 이런 욕망을 끊겠습니다.“ 하고 예를 들어

1.커피를 끊습니다.
2.성체조배를 1시간 늘리겠습니다.
3.이러이러한 잡념을 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4.남의 흉을 절대 보지 않겠습니다.
5.TV를 주말에만 시청하겠습니다.
6.이번 계절엔 희생으로 옷을 구입하지 않겠습니다. 등등...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지난 몇 년간  큰 고통이 닥칠 때 마다 하느님의 뜻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며 제 스스로 아 이번엔 이걸 끊어나가야지 하며 회개하고 악습과 욕을 끊어 나가는 과정에서 저는 많은 정화가 이루어 졌습니다. 그리고 고마우신 주님께서는 저의 이런 노력을 보시고 코앞에 닥친 숨넘어가는 문제를 그때그때 일시적으로나마 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다짐을 할 땐 반드시 공책에다 이번엔 무엇을 끊어야하는지 꼭 썼습니다. 왜냐면 급할 때는 주님 주님 이렇게할께요 하고 회개하는 척하고  시간이 가면 잊어버리거나 해이해질까봐요.  그렇게 공책에다 각 시기마다 고쳐야할 점에 대해 다짐해놓은 것을 나중에 보면 웃음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아니 내가 이때 고작 이런 걸 못 끊는 수준이었나 하고.

그런데 하느님과 나의 의사소통 도구인 공책에 쓰인‘ ~~끊기’ 다짐서는 일종의 양심성찰표의 역할로 다시 쓰여, 나태해질 때마다 다시 봅니다. 박 선생님이 주신 양심성찰표도 쓰고 있지만 저만의 구체적문제가 따로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회개는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생활개선이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되더군요.

어쨌든 하느님께서는 저의 성장과정에 맞게 시기시기마다 크고 작은 문제와 고통을 보내시어 저를 끊임없이 회개하고 성찰하게 만드셨습니다. 물론 이 과정은 저 자신의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의지보다는 하느님께서 게으른 저를 잘 아시는지라 거의 강권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회개하고 끊임없이 성화되도록 문제를 만들어주셨다고 할까요. 그래서 이젠 제가 생각해도 반듯하고  절제 있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양심성찰과 욕끊기에 이은 과정은 ‘희생 바치기’입니다. 아직 욕끊기가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몇 년간의 저의 노력을 보셨는지 초창기와 같은 숨넘어가던 시련들은 많이 완화되어 저에게 많은 축복을 주고 계십니다. 요즘은 제가 이런 걸 받아도 되나 싶게 자꾸 채워 주십니다. 안줘도 고마운데 주시니 고마움이 뼈에 사무칩니다.

그래서 나만의 육적인 문제 보다는 조금 수준 높은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데 있어 발생하는 문제를 던져 주십니다. 심각한 영적 유혹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저는 이제 기도와 더불어 희생 바치기를 합니다. 큰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한 달간 TV를 완전히 끊겠습니다 등등. 하느님께서는 내가 작은 희생을 바칠 때 그 영혼에 크게 역사해 주신다는 것을 이젠 경험해봐서 알기 때문이지요.

돌이켜보면 지난 9년간 지난한 광야의 세월을 보내왔습니다. 냉담을 풀고 2년 만에 박 선생님의 가르침을 접한 것은 헤매지 말라고 지름길로 인도하신 하느님의 배려였습니다.

대죄의 유혹을 완전히 떨쳐 버리는데 만 6년 걸리더군요. 최소한 현재 저의 영적 상태는 육체적기도만에 머물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잇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회개의 과정을 오랜 세월 구체적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지도사제도 없었고 기도모임도 없었고 누구에게 이게 뭔지 물어볼 사람도 나눔을 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직 혼자 박 선생님의 테이프를 주요한 영적 지침으로 삼아 산 넘고 강을 건너왔습니다. 이 영적 지침이 없었다면 고생도 더 많이 했을 것이고 이 혼란의 시대에 미세한 부분에서 영적 분별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시대의 사명을 깨달으며 완덕으로 가는 길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이젠 두렵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깊이 사귀는 길을 이 수련을 통해 해왔기 때문이지요. 저는 행복합니다. 하느님이
늘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보다 깨끗해지니 마음에 벅차오르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올바른 저의 기도는 들어주신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