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훈의 말씀(3월 2005년)

관상 (관상가 토마스 머튼의 말씀)

‘관상은 보지 못하면서도 보고,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 영적 통찰력입니다. 형상이나 명확한 개념으로도 파악할 수 없는 아주 깊은 지식입니다. 말과 상징으로 암시될 수는 있지만, 그 아는 것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관상은 하느님을 만지기라도 하듯 하느님을 압니다. 관상은 하느님께서 보이지 않게 자기를 만져주시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느님을 압니다. 관상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은사입니다. 우리가 이 은사를 받을 수 있는 준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 이 은사를 주느냐는 오직 하느님께서만 결정하십니다. 일반적으로 관상 생활은 우리의 수련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관상 생활에서는 하느님을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으로 압니다. 우리의 정신과 의지가 모든 사물과 죄에서 이탈되면 영혼이 자유로워지면서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의 선물로 영혼을 채워 주십니다. 우리의 영혼이 이것들로부터 얼마큼 이탈되고 얼마큼오직 하느님의 뜻만을 따라 사느냐에 따라, 그것에 비례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 체험을 통하여 하느님이 누구시고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다음과 같은 사람에게 관상의 은사를 주십니다. 오만하지 않은 영혼, 자기를 들어내기보다는 자기를 낮추려는 열망을 갖은 영혼,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위대하게 보이기보다는 하잘 것 없는 사람으로 여기기를 바라는 영혼, 이렇게 깊은 겸손을 갖은 영혼들에게만 주시는 은사입니다.

겸손하지 않을 때 위험이 있습니다. 하느님과의 순수한 사랑의 일치를 위해서, 관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염원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관상생활을 추구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저는 진정으로 하느님을 원하고 관상을 체험하기 위하여 수도원에 들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들이 바라든 것을 얻지 못하고 ,강한 불만으로 인하여 실망하고 지쳐서 수도원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관상의 체험은 대단한 생각과 통찰력을 계속 쌓는다고 이루어지거나, 영웅적 고행을 실천한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 돈으로 살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순수한 은총이며 은총의 선물이기때문에 그 은사를 누구에게 주느냐는 오직 하느님께서만 결정하십니다. 관상에 대한 지나친 열망은 관상에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실망에 대한 큰 유혹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직 하느님께서 주시기를 바라는 은총의 선물만을 바라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겸손은 하느님에 나라로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유일의 열쇠입니다. 이 열쇠로 하느님과의 영성생활이 시작됩니다. 완전한 겸손 안에서 모든 이기심은 사라집니다.    

2. 예수님의 말씀(꼰셒숀 데 아르미다를 통하여 주신)

거만

거만은 사탄의 숨결이고 사탄의 본질이다. 거만은 자기 자랑을 하면서 다른 이들을 업수이 여기고, 자기를 들어 올린다. 거만은 가난한 이들, 보잘 것 없는 이들 또는 힘이 없는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끔직한 악이다. 나는 이런 거만과 거만한 것들 모두를 아주 미워한다. 그리고 이런 영혼들로부터 멀리 한다. 그 이유는 이들은 그 안에 사탄을 데리고 다니기 때문이다.

거만한 이들은 자기 안에 많은 악들을 가지고 있다.  교만, 건방짐, 허영, 화를 자주냄, 오만, 욕심, 질투, 시기, 속임, 위선 등. 거만한 이들은 다른 이들이 자기를 인정하여 주고 칭찬하여 주기를 바라는 갈망이 그치지 않는다. 이것 때문에 영혼은 썩어 들어간다.

거만은 죄의 고리들로 엮어지는 쇠사슬이다. 영혼들은 이어지는 이 죄의 고리의 숫자를 헤아릴 생각은 하지도 않고 계속 죄를 범한다. 그러면 사탄은 이 쇠사슬로 영혼의 목을 매어,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드디어는 영원한 파멸과 불행으로 영혼을 떨어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