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훈의 말씀(5월 2005년)  

(1)내적  집중과 예수님 곁에 머물러 있는 법(관상)

대부분의 영혼들은 세상의 피조물의 잡음 속에서 너무나 혼란한 상태에 있으며 그로 인해 사랑에 가득 찬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데 방해가 되게 한다. 영혼은 하느님의 음성을 통해 완전한 마음의 순결과 하느님의 사랑에로 불림을 받고 인도되어야 한다. 그들에게는 휴식과 고요와 은거와 고독이 결핍되었다.

만일 외적인 일에 완전히 몰두하지 않고 좋은 의도에서 하더라도 거기에 푹 빠져들지 않도록 언제나 조심한다면 정신을 집중하고 명상에 잠겨있기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탄은 내적 생활 가운데에서 완덕이라는 크고 중요한 작품인 것을 파괴하려고 유혹한다. 현명한 사람은 깨어 있고 주로 그의 내적인 것을 보존하여 노력한다. 그는 그의 외적인 사무에 너무 몰두하지 않고 다만 그의 내적 생활이 손해를 입지 않는 한도 내에서 그 일을 수행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적 생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생활이 숨겨져 있고,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적인 사람은 그의 마음을 홀로 하느님께만 열어보고 모든 피조물에게는 굳게 닫힌 동산과 같다. 그는 자주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속을 관상하며, 또 흠숭하고, 사랑하며, 하느님의 기쁨으로 충만 되어 경탄한다. 만일 네가 하느님의 외아들과 모든 면에서 닮고, 네가 그분처럼 가난하고 멸시받고 고통을 받게 된다면, 너의 마음도 그분의 것과 똑같은 기쁨으로 채워져 너는 그 분과 같이 천국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내적인 사람은 그가 할 수 있는 대로 항상 모든 무질서한 애착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잠심 중에 있도록 한다. 그래서 그는 항상 자신을 쉽게 들어올려 하느님께로 돌아갈 수 있으며 큰 고요 가운데 하느님을 즐길 수가 있다. “네가 만일 외적인 위로를 업신여긴다면, 너는 내적 위로를 얻게 될 것이다.”라고 토마스 켐피스는 말하였다.      

(2) 타인의 이름을 손상시키는 중상(회개)-예수님께서 꼰셒숀 데 알미다에게 주신 말씀

중상은 교만과 투덜거림에서 나온다. 거만과 상처받은 자애심이 자기 엄마의 끔직한 괴물인 투덜거림을 먹여 주면서 양육한다. 중상은 사랑을 거슬리는 것 뿐 아니라 사랑을 죄로 더럽히고 죽이기까지 한다. 중상은 어떤 형태로든 허위를 가지고 타인의 이름에 손상을 끼치는 것을 의미한다. 투덜거림과 중상사이에는 다만 한 단계의 차이다. 투덜거릴 때는 과장하여 말하기 쉽고 과장은 거짓말을 만들어 내고 드디어 중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에게 천상의 벌을 초래하는 죄이다. 또 이것을 소문으로 세상에 퍼지게 하면 그들은 화를 입게 되리라. 이런 죄는 너무 큰 죄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이것을 들은 모든 이들에게, 또 이 소문이 퍼진 곳곳에 가서 훼손된 명예를 회복시켜 놓지 않으면 나의 용서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금을 합친 것 보다 더 귀한 가치를 갖은것이 사람의 평판과 명예인데 이것을 훼손시킨 죄는 그 죄를 용서 받기 위하여 훼손된 명예를 복귀 시켜놓아야 한다. 너희가 타인의 물건을 훔쳤을 때도 그 죄를 용서 받기 위하여서는 훔친 물건을 되돌려 주어야만 용서를 받을 수 있는데 하물며 헤아릴 수 없이 귀한 가치를 갖은 사람의 평판이나 명예를 훔쳤을 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3) 비방에 대하여(성 프란시스코 살레시오)

이 세상에 비방을 근절 시킬 수 있다면 죄악과 불의의 대부분이 없어질 것이다. 타인의 명예를 부정하게 손상시킨 자는 범한 악을 배상하는 외에 비방의 경중에 따라 그 사람에게 상처 준 명예를 기워 갚아야 한다. 누구를 막론하고 남의 소유를 사사로이 갖고 그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런데 인간의 외적 소유물 중에 명예는 가장 귀중한 것이다. 또 비방은 일종의 살인죄다. 우리는 원래 세 가지 생명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영적 생명은 하느님의 은총에 있고, 육신 생명은 영혼에 있으며, 사회적 생명은 명예에 있는데, 죄는 첫째의 생명을 빼앗고, 죽음은 둘째 생명을 소멸시키며, 비방은 셋째 생명을 죽인다. 또 비방하는 자는 혀로써 동시에 삼중의 살인죄를 범하는 것이 보통이다. 즉 듣는 자와 말하는 자와 자신의 영혼을 죽여서 둘의 영적 살인을 하며 동시에 비방당하는 자의 사회적 생명을 죽이는 까닭이다. 그럼으로 직접 간접을 막론하고 남을 비방해서는 안 된다. 남에게 없는 죄를 애매하게 씌워서는 안 된다. 이런 것은 거짓 증거를 세워 남에게 상처를 주기위하여 진리를 굽히는 것임으로 허위와 남을 손상하는 이중의 죄를 범하여 하느님을 막심하게 거역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