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합시다.

온 우주의 주인이시며 왕이신 하느님, 흠숭과 영광과 감사드립니다. 온 인류에게 내려 주신 당신의 자비와 사랑에 깊이 감사와 영광 드립니다. 기리 영광과 감사 받으소서. 오늘도 이 작고 보잘 것 없는 홈페이지를 당신께 봉헌 합니다. 당신께서 완전히 주관하시고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이 홈페이지를 접속하는 모든 이들을 성모 성심을 통하여 예수성심께 봉헌 합니다.

성령이시여, 비나이다. 당신의 능력으로 저희를 주관하시여 하느님의 모습으로 저희를 변화시켜 주옵소서. 비춰주소서. 치유하여 주옵소서. 힘주소서. 인도하여 주옵소서. 당신의 능력으로 그들 안에서 하느님의 뜻이 완전히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 홈페이지를 통하여 세상 곳곳에서 많은 영혼들을 치유하시고 정화 시켜 주시고 당신의 길을 따라 가는데 필요한 모든 은총으로 그들을 축복 하여 주시고 특별히 보호 하여 주옵소서.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쏟으시는 당신의 희생과 사랑에 깊이 감사드리고 찬미 드립니다. 진심으로 당신을 깊이 사랑합니다. 아직도 당신을 모르거나 외면하는 이들을 특별히 봉헌 합니다. 그들이 빨리 당신이 누구신지 깨닫게 하여 주시고 이 고달픈 삶의 길에서 당신의 품안으로 돌아오게 하여 주옵소서. 이 달 오월은 당신께 특별히 봉헌한 달이오니 온 인류와 특히 이 홈페이지를 접속하는 이들이 당신의 이끄심에 겸손하게 따라갈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당신의 겸손을 저희에게도 주옵소서. 그 겸손으로 하느님의 뜻과 당신의 이끄심에 순종하게 하시여 저희를 하느님의 품으로 깊이 이끌어 주옵소서. 저희를 위한 하느님과 당신의 지향들을 이 작은 홈페이지를 통하여 완전히 이루시고 위로와 사랑과 감사 받으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저는 지난 약 20년 동안 남미에 자주 갔고 한 때는 그곳에서 상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지난 그날들을 돌이켜 생각하여 보면 하느님께서 저를 그곳으로 인생 공부를 하라고 수학여행을 보내셨던 기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저의 영성생활이 많이 깊어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하루하루 닥쳐오는 세상 풍파나 일거리들을 그때그때 급히 해치우느라고 바빠, 하루 일어나는 사건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를 깊이 묵상 하지 않고 그냥 하루를 종이 넘기듯 넘기면서 무의미하게 사는 것 같습니다. 고통이 있으면 그것에 대한 불만과 투덜거림으로, 기쁜 일이 있으면 그 기쁜 감정에 빠져 하루를 보내고 이렇게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면서,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각각 사건들을 통하여 주시는 중대한 메시지를 알아듣지 못하고 살기 때문에, 고아처럼 인생의 넓은 사막에서 길 잃고 헤매다가 이 세상을 떠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고아로 이 세상에 버려두시지 않았는데.............!!

우리가 살면서 일어나는 하나하나의 사건들 안에는 하느님의 애절하시고 깊은 사연의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전달하시고자 하시는 당신의 뜻 깊은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건들 안에 들어 있는 깊은 메시지의 의미를 생각 해 볼 여지없이 쭉쟁이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가끔 고요한 시간을 갖고 하느님과 함께 묵상의 시간을 갖는 것은 참으로 중대한 것 같습니다.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에 대하여 길을 안내 해주시고 힘주시고 안내하여 주십니다. 이런 묵상이 없으면 하느님께서는 아무리 우리를 도와주시고자 하여도 귀먹은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전하실 길이 없습니다. 우리의 고통은 바로 하느님의 고통이며 하느님께서는 우리보다 더 아픔을 느끼시기 때문에 우리를 그런 고통에서 구원하시고자 애절히 원하십니다. 우리를 절대로 고아로 이 험한 세상을 살라고 버려두시지 않으십니다.

저는 몇 년이 지난 요즘 가끔 조용한 시간을 갖고 예수님을 모시고 묵상 중에서 그동안 내가 걸어 온 인생 거리들의 지도를 그려 봅니다. 신비로운 것은 이것들이 하루하루에서 끝난 토막길들이 아니라 계속 이어 지면서 정거장이 있고 또 이 정거장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지도를 앞에 놓고 보니 하루하루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하느님께서 나를 당신께 이끄시는 길이요, 지금 까지 이어진 정거장들 이었던 것 같습니다. 종착역은 하느님의 품입니다.    

남미는 대체적으로 아주 가난합니다. 새로운 날이 닥쳐오는 것에 대한 큰 두려움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하루를 어떻게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들입니다. 즉 생명을 유지할 양식 문제 때문에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것이 어둡고 무섭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어느 기도회 봉사원이 말하기를 자기는 새로운 아침이 무섭답니다. 왜냐 하면 날이 새면 아이들은 아침에 먹을 것을 기대하고 엄마의 눈치를 보는데, 아주 자주 그 아이들에게 아침, 점심, 저녁까지 아무것도 먹을 것을 주지 못할 때가 많답니다. 그러면서 울더군요. 이런 처지에 사는 아이들은 부모 몰래 종이를 먹고 물을 마신답니다. 이것이 배를 채운답니다. 어떤 아이들은 부모 몰래 나가서 풀을 뜯어 먹고 물을 마신답니다. 어떤 아이들은 흙을 먹고 물을 마신답니다. 이렇게 하면서 하루하루 생명을 유지 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또 어떤 곳을 가니까 약 40-50평 되는 곳에 통나무 몇 개로 기둥을 세우고 그 곳에서 미사를 드리고 또 기도회 구릅들이 열절이 하느님을 찬미 하는 곳들도 있었습니다. 하느님께 열절이 기도 합니다. 성모님께 열절이 기도 합니다. 태양열이 너무 뜨거워 질식할 것 같은 태양빛 아래서 이렇게 하느님께 기도들 합니다. 얼마 지나니까 가난하신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어디서 몇 푼 얻어다 주십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고 지붕을 얹습니다. 또 그들은 그곳에서 계속 하느님과 성모님께 열절이 찬미와 감사와 청함의 기도를 합니다. 하느님과 성모님께서 또 조금 얻어다 주시면 다음에는 벽 한쪽을 가립니다......... 그 다음 다른 벽 한쪽을……. 또 몇 달이 지난 다음 문 한쪽을 ....... 하느님의 성전이 긴 세월을 두고 이렇게 가난하게 세워지는 곳을 여러 곳에서 보았습니다. 가난하신 예수님과 성모님의 수고하시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처럼 보았습니다.  

내 생전 처음 참으로 가난하시고 무력하신 예수님과 성모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 안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사시는 예수님과 성모님께서는 그 사람들과 똑 같이 가난하십니다. 가난하신 예수님과 성모님께서는 돈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움직이시면서 도움을 간청하시는데 많은 이들로부터 거절당하십니다. 겨우 조금씩 얻어 오시는 예수님과 성모님의 모습과 그 분들의 고통을 영혼의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하루 생명을 연명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다하는 가난한 이들 안에서 예수님과 성모님께서도 똑 같이 가난하시게 사시면서 그 사람들을 도와주시지 못하여 몹시 괴로워하심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때 생각 난 것이 어느 성당 앞에 예수님의 성고상이 있는데 팔이 없는 예수님이랍니다. 그 의미는 우리 인간들은  예수님의 팔이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도와 드리지 않으면 예수님께서는 팔이 없으셔서 다른 이들을 도와주실 수 없는 것을 상징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바로 이것을 남미에서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시지만 당신의 전능하심을 인간의 협조 없이 아무 때나 사용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지상에 태어나셨을 때 가난하게 태어나셨고 가난하게 살으셨고 고통을 당하지 않으시고도 세상을 정복하실 수 있었지만 가장 처참한 고통을 당하시고 죽음을 당하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데 인간의 협력을 요구하시는 하느님의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  

이런 어려운 현실적 문제들이 쌓여있는 남미에 가서, 그 사람들을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하느님께 매어 달려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시고 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치유해 주시기를 간절히 청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안수를 하기 전에 ‘무슨 지향을 위하여 기도 할까요?’ 하고 묻습니다. 그때 지향들을 말하면서 자기네들이 처해 있는 상황들을 말합니다. 남미에는 약 80 프로 이상이 가톨릭 입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안수를 하면서 그들의 지향을 위하여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눈에 드러나게 역사 하시면서, 그들을 넘치는 자애심으로 돌보아 주시는 하느님의 눈물겨운 자비를 많이 체험합니다. 또 그들의 고통이 바로 하느님의 고통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 안에서 함께 고통 받으시고 가난하시고 굶주리고 계시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그때 저는 각 사람들과 함께 하시면서 역사하시는 하느님에 대하여 많이 배웠습니다.

그때 체험들 중에 잊을 수 없는 체험은, 그들의 많은 고통들이, 분별을 못하는 것과 보호 기도를 하지 않아서 그것 때문에 오는 고통들이 얽히고 설켜서 고통의 깊은 숲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고통들은 우리의 영혼 구원이나 천상의 복을 받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고통들입니다. 올바른 분별력과, 적을 분별하였을 때 어떻게 그들을 대항하여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 지식과 그리고 보호기도의 중요성을 그때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약간의 보호 기도를 하였어도, 유혹자들이 몰려 있는 그 골목길을 피하여 갈수도 있었을 텐데 그것에 대하여 너무도 무지 하였기 때문에, 아무런 방어 대책도 없이 유혹자들의 굴을 찾아 들어가서, 얻어맞고 상처 받고 또 그들의 포로가 되어 밤낮으로 고통의 회초리로 고문을 당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적어도 이것들에 대한 기본 지식이 필요합니다. 이런 대책이 없으면 유혹자들의 놀림감이 되어 밤낮으로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바치면서 사는 영혼들이라 해도 유혹자들은 그들을 만만히 보고 아무 때나 공격하여 그들을 여지없이 파괴시킵니다. 영혼들은 기도의 주먹으로 한번만 ‘펑’쳐도 유혹자들이 겁을 먹고 도망 갈터인데 그것을 몰라서 오히려 여지없이 당하고 쓰러지고 상처 입고 파괴됩니다.

우리가 올바른 분별을 하고 유혹자를 대항하여 어떻게 싸우는지 알고 그대로 대항하여 싸우면, 유혹자들이 우리 가까이 오지를 않습니다. 왜냐 하면 우리가 잘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우리를 건드렸다가 자기가 큰 피해를 받게 될 것을 알기 때문에요. 그러나 전혀 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유혹자들이 만만히 보고 수시로 공격하고 조롱하고 파괴시키면서 즐깁니다.    

지난 홈페이지에는 고통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고통의 원인 중에 유혹자의 공격을 받는데서 오는 고통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시대에 영적 전쟁은 악령이 하느님께 대항하여 싸움을 걸어오는 전쟁입니다. 유혹자들은 하느님께 직접은 대항하여 싸움을 걸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하느님께 공격하여 싸움을 걸어옵니다. 특히 하느님께 가까이 하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더 강한 전쟁을 걸어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올바르게 분별하고 그에 따라 하느님의 이끄심 대로 살아가면 어떤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모든 은총을 쏟아주시는 시대입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누구나 모든 악과 유혹자들을 정복할 수 있는 은총을 쏟아주시고 계십니다. 무서운 이 시대의 전투장 한 가운데 살면서 우리가 적의 정체를 분별 못하거나 알아도 전투방법을 모르거나 또 안다 하여도 자기방위를 하지 않으면 깜박 할 사이에 여지없이 유혹자의 포로가 되어 고통의 바다 속으로 영원히 빠지게 됩니다.

특히 고통이나 시련 중에 있을 때 이것들이 더욱 필요합니다. 우리가 유혹자의 정체를 찾아내고 전투 법을 잘 쓰면 승리 하는 것 뿐 아니라 그에 따라 오는 많은 축복을 받고 하느님께 뛰어 가게 됩니다. 또 이 전투시대에 성모님의 꿋꿋한 장군들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전투에서 구원할 수 있습니다. 이 전투의 지휘자는 성모님이십니다.

다음은 성모님의 메시지입니다. 묵상합시다.

‘너희는 선한 영과 악한 영들, 천사들과 마귀들 사이에 전투 중 가장 고통스럽고 어려운 시대에 들어섰다. 너희는 이 시대에 너희 주위에서 또 너희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전투장에서 살고 있다. 또 사악한 영들이 너희를 죄와 악의 길로 데려가려고 꾀하는 유혹들의 드센 힘의 공격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 이 시대에 너희 고통의 짐이 얼마나 무거워 지는지 너희를 바라다보는 나의 눈에는 눈물이 어린다. 나는 너희의 엄마로서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 곁에 있다. 지금은 내 큰 고통의 때이고 내가련한 자녀인 너희 모두에게 큰 고통의 때가 왔다. 그러니, 내게 피신하여라. 어서 내 ’티 없는 성심‘의 안전한 피난처로 달려오너라. 너희와 온 인류에게 들이 닥친 이 큰 시련기동안,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  

(집회서 2장) ‘주님을 섬기려 나아갈 때 네 자신을 시련에 대비시켜라. 네 마음을 바로잡고 확고히 다지며, 재난이 닥칠 때 허둥대지 마라. 주님께 매달려 떨어지지 마라. 네가 마지막 날에 번창하리라. 너에게 닥친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이고, 처지가 바뀌어 비천해 지더라도 참고 견뎌라. 질병과 가난 속에서도,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을 믿어라, 그분께서 너를 도우시리라. 너의 길을 바로잡고 그분께 희망을 두어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그분의 자비를 기다려라. 빗나가지 마라. 넘어질까 두렵다. 좋은 것들과 영원한 즐거움과 자비를 바라라. 그분의 보상은 기쁨을 곁들인 영원한 선물이다.

주님께서는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죄를 용서하시고 재난의 때에 구해 주신다. 불행하여라, 비겁한 마음과 게으른 손, 두 가지 길을 걷는 죄인! 불행하여라, 믿지 않는 까닭에 나약한 마음! 그 때문에 보호를 받지 못하리라. 인간의 손에 내 맡기지 말고 주님의 손에 자신을 내 맡겨라. 정녕 그분의 위엄이 크신 것처럼 그분의 자비도 크시다”    잠시 묵상합시다.

유혹자의 정체를 분별하는 것에 대하여는 전에 이 홈페이지 에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이 달에는 유혹자의 정체를 찾아낸 다음 어떻게 그들과 싸우는지 전투 방법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 유혹을 물리치는 방법 **

성 그레고리는 말하기를 사람들은 큰 유혹을 당하면 즉시 모든 것이 망했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버리시고 은총을 거두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큰 착각이라고 하십니다. 그와 반대로 유혹 당하는 것은, 특히 덕을 닦는 사람과 완덕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에게 오는데, 그것은 이런 영혼들에게 강하고 꿋꿋하게 되는 훈련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고 하느님께 가까이 가서 상급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유혹자는 우리가 죄를 범하게 만들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고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만들기 위해 유혹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하시어, 경험을 얻게 하시고 그 경험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을 꿋꿋하고 성숙하게 만드시어, 하느님께 더 가까이 하게 하시기 위하여, 유혹자의 시련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유혹과 싸우는데 필요한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십니다. 그러나 이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모든 고통을 하느님께 봉헌하면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이 시련을 통하여 우리에게 선익을 주시리라는 것을 신뢰하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겸손하게 인내하고, 항구하게 싸우면서, 고통을 감수 하면서, 최선을 다하여 하느님의 뜻대로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깁니다. 이렇게만 하면 하느님께서 절대로 우리를 저버리시지 않고 우리의 승리는 보장됩니다.  

복된 성 안토니오는 영적싸움과 시련과 싸우는데 대한 지식과 경험이 많으신 성인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기를 유혹자를 정복하는데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는, 시련 중에 용기와 꿋꿋함과 명랑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유혹자는 우리의 꿋꿋함을 보고 우리를 해칠 수 있다는 희망을 잃고 물러간답니다.

성 이그나시오는 말씀하시기를 유혹자가 우리에게 시련을 줄때, 남자와 싸우는 여자처럼 행동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자가 덤벼들 기세를 보이면, 여자는 즉시 싸우려는 기세를 가라앉히고 돌아서서 도망간답니다. 그러나 남자가 겁을 집어 먹고 우물쭈물 하면, 여자는 어찌나 기세가 등등하게 덤벼드는지, 그렇게 사나운 동물이 이 지상에 없다고 하십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유혹이 우리에게 다가 올 때 우리가 겁을 먹는 기색을 보이면, 유혹자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용기 충천하여 덤벼드는 호랑이가 된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랑해지면, 유혹자는 그것을 보고 뼈 저리는 고통을 느끼고 우리를 피해 간답니다. 자기가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약해지기 때문에요. 그 반면에 우리가 슬퍼하고 겁을 집어 먹으면, 유혹자는 매우 기뻐하면서 더욱 드세게 달려든답니다. 그래서 시련을 받을 때 우리는 용기를 내고 명랑한 얼굴을 보이면 유혹자는 더욱 약이 올라 한다고 합니다. 어려운 시련이나 고통을 통하여 유혹의 기회가 있을 때 이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유혹자를 물리치는 방법으로 다음과 같이 간략해 봅니다.

1. 유혹을 받거나 시련 중에 용기를 갖고 꿋꿋함과 힘을 내며 명랑함을 갖는다.
  
2. 두려워하지 말 것
유혹자는 우리가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으면 별로 해를 끼치지 못하고 우리를 쓰러트리지 못한다.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우리가 유혹자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필요한 모든 은총을  주신다. 그래서 하느님을 신뢰하고 기도하면서 용감하게 싸운다.

또 하느님께서 우리의 선과 이익을 위하여 허락하신 것이고,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갖고, 이 전쟁을 이겨 내도록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겸손의 무기를 가지고 조용히 싸운다.  

3. 우리가 유혹을 받을 때나 시련을 당할 때,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시고 계신다. 이것을 생각하면 용기를 얻게 된다. 또 천상에 모든 천사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우리의 승리를 기다리고 우리가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여 청하면, 언제나 기꺼이 우리를 도와 함께 싸워 준다. 시련 중에는 우리는 싸움터에서 싸우는 군인과 같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켜  보신다는 뜻은 우리가 하느님의 도움이 꼭 필요할 때는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를 도우신다는 뜻이다.

4. 유혹자는 하느님께 원한을 품고 있으며 하느님께 대한 미움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는 직접 대항하거나 분풀이나 싸울 수 없기 때문에 그 대신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그분의 자녀들을 대항해 분풀이를 하거나 싸움을 걸어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시련 때 우리를 고아로 내 버려두지 않으시고 다른 어느 때 보다 더 가까이서 지켜보시고 힘을 주신다. 이것을 기억하고 용기를 잃지 않는다.

5.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힘에 겨운 유혹은 허락하시지 않으신다. 유혹의 힘이 강해지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도움과 은총도 그 만큼 더 강하고 크다. 우리의 시련 중에 하느님께서는 주무시는 것 같이 보이고 느껴진다. 우리를 잊으시거나 안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훈련시키시기 위하여 개입하시지 않으신다. 시련을 통하여 오는 무한한 가치를 가진 천상 보배들을 광산에서 캐내는 훈련을 시키시는 때이기도 하다.
  
6. 시련 때는 죄를 짓지 말고 오직 하느님의 뜻대로 행동하도록 노력한다. 기도, 겸손, 보속, 단식을 하면서 성모님과 천사들, 특히 구품천사들과 성 미카엘에게 기도 한다.

좋은  보호 기도가 시편에 있다. 양심성찰을 철저히 하고, 잘못하고 있는 것이 있으면 시정한다. 예로 기도를 하지 않거나, 신심생활을 하지 않거나, 어떤 죄 된 생활을 하고 있는지,     죄나 교만으로 누구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지 큰 죄를 짓고 고백성사를 보지 않아 하느님의 용서를 받을 것이 있는지 성찰하고 시정한다. 하느님의 자비를 구한다. 우리의 죄의 결과로 오는 불의 고통일수도 있다. 이 고통은 우리의 영혼의 질병을 치료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때는 겸손하게 인내하고 그 악습을 끊도록 한다.

7.  시련기나 유혹시기에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이것은 유혹을 정복할 수 있는 강한 무기이다. 우리의 선과 유익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고 신뢰한다.

8. 유혹자는 각 사람의 약한 점을 통하여 유혹한다. 유혹자의 공격을 미리 막기 위해서 우리의 약한 부분이나, 유혹자가 우리를 가장 쉽게 공격할 수 있는 약한 부분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고 그곳에 더 강한 방어진을 친다. (기질, 성격, 취향, 성향, 장점은....)
            
     예를 들면

     -부드럽고 정이 많은 사람은 음란과 허영으로 유혹 당하기 쉽고
     -성격이 강직한 사람은 분노, 교만이나 격정, 비판
     -수다스러운 사람은 투덜거림, 악평, 경솔한 판단, 분열, 미움
     -소극적인 사람은 신경과민, 예민한 성격, 무질서한 상상, 소심증, 억측,
       예민한 감정

9.  유혹을 당할 때 즉시 이에 정 반대 되는 덕행을 행동하며 대항하여 싸운다.
    
    격정은 침착으로, 투덜거림은 침묵으로, 교만과 거만은 겸손으로,
    비판과 판단은 겸손으로, 미움은 용서와 사랑으로,  격정은 인내로..

10. 유혹을 시초에 물리친다. 기다리지 않는다. 기다리면 유혹자의 힘의 뿌리가 깊어지고 대항해 싸우기가 힘들어 진다. 성 예로니모는 말하기를 원수가 작을 때 무찌르고 시초에 목을 졸라매고 그가 자라기전에 뿌리를 뽑아 버리라고 하였다.

11. 한가하지 말 것
    하느님께서 성 안토니아에게 말씀하셨다.
    ‘마귀에게 네가 항상 바쁘다는 것을 보여라’고  

12. 깨어 기도하고 단식 하여라
기도 양을 늘린다. 기도를 그치지 말고 한다. 성모님께서 주신, 회개를 통하여 하느님께  가까이 갈수 있는 다섯 가지를 강화한다.
즉 단식, 기도, 철저한 양심성찰과 고백성사,  미사첨례 자주 (성체조배), 영적독서와 하느님의 힘과 지혜를 얻는 고요의 시간

13. 선의 형태로 오는 유혹의 정체를 분별한다.
유혹자는 덕행과 완덕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유혹할 때는, 빛의 천사나 선의 형태로 가장하고 유혹한다. 성 보나벤추어는 말하기를 유혹자는 이런 영혼들에게 처음에는 좋은 것을 제시하고 그것을 하도록 유혹한다. 그 다음 선을 악한 것과 섞으면서 끌고 간다. 이 시점쯤 되면 영혼은 이미 유혹자의 올가미에 묶여 있어 그곳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게 된다. 유혹자는 이제 자기의 정체와 독성을 드러내 보이고, 영혼이 공공연히 죄를 범하게 한다. 유혹자는 이런 방법으로 진보된 영혼들을 무수히 쓰러트리어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떠나가게 하거나 깊은 영원한 구덩이에 빠트린다.

이런 유혹을 물리치는 방법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숨은 유혹자의 정체를 알아내는  분별이 필요하다. 그래야 그에 적절한 작전 방법을 결정할 수 있다. 많은 성인들   과 영성생활 대가들은 공통으로 가르치기를, 이런 경우 이것을 분별할 줄 아는 경험과 지식이 있고 기도하는 거룩한 영적 지도자의 도움과 그에 순명함이 중요하다고 한다. 올바른 영적 지도자의 선정도 중요하지만, 그에게 순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혹자에게 넘어가기 쉽다고 한다. 영적 지도자를 잘못 선정하여도 분별을 잘 못하여 유혹자의 올가미에 걸리게 된다고 한다.

어느 영성가가 말하기를 유혹자들은 우리를 따라 다니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면서, 유혹할 수 있는 기회를 노리고 있으며, 기회가 있는데도 유혹하기에 바쁘다고 한다.   악으로 유인하거나, 나쁜 생각을 일으키거나 악한 충동을 일으키면서 죄를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한다.

14. 악한 생각이나 음란한 생각으로 유혹을 당할 때나 추잡한 생각 또는 신앙에 거슬리는  생각이 떠오를 때 사람들은 죄를 짓는 줄 알고 고민한다.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한  그것은 죄가 아니며 다만 스쳐가는 생각일 뿐이다.

이런 경우에는 이런 생각들을 없애버리려고 애쓰려고 에너지를 소모하지 마라. 없애도록 노력은 하되,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이렇게 억지를 쓰는데서 오는 손해가 유혹에서  오는 손해 보다 더 크다. 이것은 참으로 조심해야 할 것이며 특히 소심한 사람들은 신경이 너무 예민해 지고,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자신의 세심과 소심증과 무분별로 더 큰 해를 입게 된다. 이런 유혹을 물리치는 방법은 기진맥진하며 자기의 상상력을 횡폭하게 취급하면서 유혹을 물리쳐 버리려 노력할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모르는체하고 무시해 버리고 무관심 하는 것이다. 다른 일에 정신을 집중하고, 이 나쁜 생각들에서 마음을 다른 곳에 몰두 하여라. 그러면 그 생각이 없어진다. 무시하여 버려라.

악한 생각이 나면 다른 생각을 하면서 다른 곳으로 생각을 돌리도록 하여라. 그러나 그런 생각이 또 오르면 상상력을 무리하게 남용하거나 자신을 괴롭히고 피곤하게 하지 말고, 다른 생각에 전념하는 것이다.

15. 유혹의 종류에 따라 그 물리치는 방법도 다르다.

어떤 종류의 유혹은 그 유혹에 관심을 기울일수록 유혹의 힘이 더 강하게 되고 마음이 그것에 이끌리고 그것에 신경을 더 쓰게 된다.

어떤 유혹은 우리가 도피함으로써 이겨낸다. 그런 기회를 피하고 그런 유혹에서 우리의 눈과 기억과 생각을 빨리 돌려 버리는 것이다.  

또 어떤 종류의 유혹, 즉 분노, 질투, 원한, 미움, 복수, 격정들의 악습들은 달라붙어  
서 싸워 이겨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일으키는 이야기 거리나 생각거리들을 피해야 한다. 또 이와 반대되는 덕행을 실천하는 것도 승리하는 방법이다. 우리의 자존심을 짓밟고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복종 하고 겸손을 수련하고 우리를 박해하고 모욕하는 사람들과 사귀어 겸손을 수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16. 영적 지도자에게 상담하여 당하고 있는 유혹을 밝히고 조언을 얻는다.
    
영적 의사에게 (영적 지도자)유혹을 숨김없이 밝힌다. 영적 유혹의 병을 아무에게 말하지 않고 그것을 고칠 수 있고 거룩하고 경험 있는 영적 의사에게 가서 밝히고, 처방을 받고 약을 처방받은 대로 써야 한다. 유혹을 밝힐 때 다른 사람을 고발하거나, 판단하거나 상처 받은 자애심으로 속단하여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외과 의사가 수술대에서 신경과 살을 갈라놓을 때 갖는 철저한 조심성으로 겸손하게 진리만 말하도록 노력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영적 지도자를 통하여 당신의 빛을 주시지 않는다. 영혼은 오히려 죄를 범하고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17. 하고 있던 영신 작업, 예를 들어 기도, 단식, 미사, 고백성사든 하던 것을 절대로 약화 시키지 말고, 늘리면 늘리지 줄이거나 멈추지 말 것. 유혹자는 바로 이것을 목표로 하 는  것이다. 이런 신심행위를 약화 시키고 못하게 막고자 하는 것이 유혹자의 목적임으로, 하던 신심 작업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강화 시키고 늘린다. 유혹과 시련이 올 때 이 면에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약해지거나 주저하거나 단축하거나 불충실 하면, 유혹의 힘은 더욱 기세를 부리고 달려들어, 고통이 더욱 커져서, 영혼은 결국 모두를 포기하게  되고 악에 힘에게 항복하고 유혹자의 포로가 된다. 그 다음 더 큰 유혹이 닥쳐온다. 이 때 영혼은 이제 유혹자를 대항해 싸울 힘이 없어지고, 사정은 더 악화 되어, 드디어는 유혹자가 그 안에서 왕 노릇을 하게 된다.

18. 유혹 시나 시련시기에는 팔짱을 끼고 물끄러미 서 있을 때가 아니다. 잘 분별하고 성찰해 유혹의 정체를 알아내고 그에 따라 싸워 물리치도록 적절한 방법과 무기를 이용한다. 우리를 유혹하려는 것을 역 이용하면 유혹자를 이길 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예로. 교만할 때 겸손의 행위, 투덜거림의 유혹이 올 때 침묵, 기도가 약할 때 기도 양            을 늘림, 사람과의 관계 절제, 행동의 절제, 말의 절제등...........

  
기도합시다.

“주님, 악한 사람에게서 저를 구하소서. 포악한 사내에게서 저를 보호하소서. 저들은 마음속으로 악을 꾀하고 날마다 싸움을 일으킵니다. 저들이 제 발걸음을 잡아 밀어뜨리려 꾀합니다. 그물처럼 줄을 펼쳐 놓았으며 저를 잡으려 길옆에 올가미를 놓았습니다. 제가 주님께 아룁니다. 당신은 저의 하느님, 주님, 제 애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주 하느님, 제 구원의 힘이시여, 당신께서는 전투의 날에 제 머리를 감싸 주셨습니다. 주님 악인의 탐욕을 채워 주지 마시고, 그의 음모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소서”. (시편 140편)

지극히 높으신 분의 보호 속에 사는 이, 전능하신 분의 그늘에 머무는 이는 주님께 아뢰어라. “나의 피신처, 나의 산성이신 나의 하느님, 나 그분을 신뢰 하네”. 그분께서 새잡이의 그물에서, 위험한 흑사병에서, 너를 구하여 주시리라. 당신 깃으로 너를 덮으시어, 네가 그 분 날개 밑으로 피신하리라. 너는 무서워하지 않으리라. 밤의 공포도, 낮에 날아드는 화살도, 어둠속에 돌아다니는 흑사병도, 한낮에 창궐하는 괴질도, 네 곁에서 천명이, 네 오른쪽에서 만 명이 쓸어져도, 너에게는 닥쳐오지 않으리라. 오히려 네 눈으로 바라보리라. 악인들이 벌 받음을 너는 보리라. 이는 네가 주님을 너희 피신처로, 지극히 높으신 분을 너의 안식처로 삼았기 때문이다. 너에게는 불행이 닥치지 않고, 재앙도 네 천막에는 다가오지 않으리라. 그 분께서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너는 사자와 독사 위를 거닐고 힘센 사자와 용을 짓밟으리라”.(시편 9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