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주인이시며 저희 생명의 창조주신 자비하신 하느님, 온 세상과 저희에게 내려 주신 당신의 조건 없는 사랑과 자비에 감사와 흠숭 드립니다. 이 작은 홈페이지를 접하는 한사람 한사람에게 당신의 자비와 치유와 사랑을 넘치게 쏟아주시며, 아주 작은 일에서 부터라도 온 마음과 영혼과 육신을 다해 당신을 찾고 신뢰하는 마음으로 실천 하는 저희가 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기리 영광, 찬미, 흠숭 받으시옵소서.  아멘.

 

 


 

미국 남북전쟁을 치르면서 수많은 인명피해와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그 당시 많은 미국 국민들 사이에 자신들의 신앙에 관한 반성과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1861년말 와킨슨 목사가 미 재무장관으로 보낸 서한을 시작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잃어버린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다시 찾자는 많은 탄원서가 정부에 보내졌다 합니다.  이를 수렴한 정부는 전쟁이 거의 끝나가는 1864년 말 무렵부터  “IN GOD WE TRUST" 라는 글귀가 새겨진 동전을 발행하기 시작 했다고 합니다. 한 나라의 모토를 그리고 하느님을 신뢰하자는 것을 국민들에게 가장 쉽게 전달하고 자주 상기하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지요. 돈은 매일 보고 쓰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이 “하느님께 대한 신뢰”에 관해 무어라 하셨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언 3,5:6

“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신뢰하고 너의 예지에는 의지하지 마라.  어떠한 길을 걷든 그분께 여쭈어라.  그분께서 너의 앞길을 곧게 해 주시리라.”


시편 9,11

“당신 이름을 아는 이들이 당신을 신뢰하니 주님, 당신을 찾는 이들을 아니 버리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22,4:5

“저희 선조들이 당신을 신뢰 하였기에 당신께서 그들을 구하셨습니다.”


잠언 29,25

“다른 사람들이 너를 어찌 생각 할는지 걱정하는 것은 위험하나 하느님만을 신뢰하면 너는 안전하리라.”


로마서 8,28

“하느님의 사람들, 곧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종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사야 41,10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힘을 북 돋우고 너를 도와 주리라. 내 의로운 오른 팔로 너를 붙들어 주리라.”


예레미아 29,11:14

“나는 너희를 위하여 몸소 마련한 계획을 분명히 알고 있다. 나는 너희에게 나쁘게 하여주지 않고 잘하여 주려고 계획을 세웠다.  그러니 너희가 나를 부르며 다가와 나에게 기도하면 너희 기도를 들어 주겠다.  너희가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상 나열한 신뢰에 관한 성경말씀들은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잠언과 예레미아의 말씀처럼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신뢰하고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는다” 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요? 


행여 기도생활 한다고 자처하는 우리들은 모든 일이 잘 될 때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보다는 자신의 능력이나 예지에 점점 의지하지는 않는지요?  또 일들이 잘 안 될 때는 “기도를 하는데도 왜 안 될까” 하며 먼저 하느님께 대한 의심(?) 이나 실망의 마음이 우리 속에서 서서히 꼬리를 물고 마음의 평정을 잃게 하는 동요가 일어나지는 않는지요?


마르코 복음서에도 보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던 제자들이 돌풍이 불어 물이 배에 차게 되자 겁을 잔뜩 먹고 안절부절 하며 예수님을 깨우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람을 재우신 예수께서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라고 꾸짖으십니다.


위의 예레미아 말씀에도 “나는 너희를 위하여 몸소 마련한 계획을 분명히 알고 있다. 나는 너희에게 나쁘게 하여주지 않고 잘하여 주려고 계획을 세웠다.” 라고 분명히 하셨습니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이 나에게 잘 된 일이라고 생각되거나 그 반대로 잘 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든 일들의 결과를 우리관점에서 이해하려는 허상에 지나지 않고  이 말씀처럼 우리에게 나쁘게 해 주지 않고 잘 해 주시려는 하느님의 원대한 계획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모든 일들을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눈으로 보며 신뢰하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수영을 배우려 하는 어린아이가 풀장 물 안에 서서 두 팔을 펼치고 서있는 부모에게 자신의 키보다 더 높은 물 속으로 부모의 팔을 향해 뛰어내리는 그 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어린아이의 마음에는 엄마 아빠가 자신을 결코 다치게 하지 않을 거라는 확고한 믿음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일반 사회생활에서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는 신뢰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가정생활에서도 부부사이,  부모 자식관계. 형제간 사이에 신뢰가 기본일 것입니다.  이 신뢰가 무너지면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 되는 것은 강 건너 불을 보듯 뻔한 일 일입니다.  하물며 우리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신뢰가 결여 된다면 우리 영성생활, 또 덕행의 수련을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이는 마치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면 이 신뢰가 겸손, 순명, 자아포기 등등 모든 덕행의 초석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덕행의 근간인 예수님의 마음 (겸손, 순명, 자아버림)을 가장 많이 닮으신 성모님도 성요셉과 더불어 겸손과 순명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사실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만이 나를 이끌어 갈 수 있었다.” 라고 성모님 당신 메시지를 통해 밝히셨듯이  마음을 다해 신뢰하고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찾으며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겠습니다.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신뢰했던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가 구약성경 말씀에 많이 나옵니다. 또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신뢰하는 자세는 신약성경 히브리서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사실 옛사람은 믿음으로써 인정을 받았습니다.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 맘에 들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그 분께서 계시다는 것과 그 분께서 당신을 찾는 이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13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죽어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했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 일뿐이라고 고백하며 자기들의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히브리서 11,39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인정을 받기는 하였지만 약속된 것을 얻지는 못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내다보셨기 때문에 우리 없이 그들만 완전하게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신뢰만이 나를 이끌어 갈 수 있었다” 는 성모님의 말씀처럼 우리도 우리자신의 하느님께 대한 신뢰의 수준을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과 접목시켜 자주 자주 위의 성경말씀들을 묵상하며 성찰해보면 우리의 현 위치를 깨닫고 이를 한층 더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오로지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믿음이  내생활의 모든 것들을 이끌어 갑니다.” 라고 자신 있게 증거 할 수 있도록 모든 덕행의 초석인 “하느님께 대한 신뢰”을 탄탄히 다져 다시는 모래위에 집을 짓는 우리가 되지 않도록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기도합시다.


겸손과 순명의 참 모범이셨으며 하느님을 그 누구 보다 신뢰 하셨던 어머니, 저희들 온전히 당신 성심께 봉헌 드리오니, 모두를 위해 계속 빌어주시며, 저희가 더 작아지고, 저희의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사랑이 꺼지지 않고 더 힘차게 타올라 성화의 길로 가고자 하는 저희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잡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항상 저희들과 저희들 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전구해 주시는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에 감사드리며, 당신께 찬미와 사랑 드리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