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합시다.


만물의 창조주시며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 영광과 찬미, 그리고 흠숭 받으소서.  당신께 대한 사랑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신 외 아드님 예수님의 겸손과 순명의 정신을 저희들이 본받고 생활에서 실천하며 살 수 있는 은총을 주시옵소서.  성령님 오소서. 저희 마음 안에 오시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과 예수님을 온전히 사랑해 드릴 수 있게 하여주시고 성경을 통해 주신 말씀들이 저희 영혼의 양식이 될 수 있도록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성모님 이 홈페이지에 접하는 한사람 한사람을 당신의 품에 안아 성화와 정화로 가는 여정에 어머니의 사랑으로 인도 하여주시며 지극히 높으신 분의 대전에서 저희들을 위해 전구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지난번 3월 강의에서는 예수님의 산상설교의 시작인 팔복에 관해 나누었습니다. 이 팔복은 바로 천상으로 오르는 여덟 계단에 비유할 수 있으며 또한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가 지향해야할 목표설정을 해주심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마태복음 5장의 팔복을 시작으로 마태복음 6장 그리고 7장까지 이어지는 예수님의 설교 말씀은 ‘팔복’ 여덟 계단을 오르는데 세부 행동지침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를 요약해보면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니 그에 걸맞게 살아야하고,

화해하며, 

극기하고, 

아내를 버려서는 아니되며,

정직해야 하고,

폭력을 포기하며,

원수를 사랑하고,

올바른 자선을 베풀며

주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와 같이 올바른 기도를 하고

올바른 단식을 하며

보물을 하늘에 쌓도록 노력하고

세상 재물이 아니라 하느님 한분만을 섬기며

만사에 걱정말고 하느님을 신뢰하며

남을 심판하지 말고

거룩한 것을 욕되게 하지 말며

주님의 뜻과 주님의 말씀을 실천 실행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마태복은 7장 12절 말씀 ‘그러므로 남이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으로 산상설교의 절정을 이루는데
황금율로 일컬어지는 이 말씀은 모든 윤리적 교훈의 압권이며 사회 윤리의 최고봉이라고 성서학자들을 말합니다.


팔복 안에 명시된 여러 가지 덕행의 실천 사항들을 성찰 해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륜 마차를 비유로 말씀드리면 우리의 영은 겸손의 바퀴와 사랑의 바퀴 그리고 이탈 (자애심의 포기)의 바퀴로 달리는 마차위에 앉은 깨끗한 영혼(죄 짓지 않는) 이 되고, 우리의 육체는 마부(하느님의 뜻)에 따라 오로지 순명하며 달리는 말과도 같이 되면 산상설교 ‘팔복’ 말씀의 제일 높은 여덟째  계단까지 올라가는 여정에 방해되는 여러 걸림돌들을 피해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 할 수 있을까요?


겸손과 사랑 그리고 자애심의 포기가 정화 성화의 길로 가는데 초석이며  자애심을 버려야 겸손을 실천 할 수 있고 겸손이 있어야 사랑을 실천 할 수 있으며 사랑이 있어야 자애심을 버릴 수 있다는 말씀과 이 세 가지의 덕행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불의 관계라고 우리는 누누이 배워 왔습니다.  불가불의 관계이지만 저의 소견으로는 자애심의 포기야말로 우리가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동시에 ‘팔복“ 에 명시된 다른 모든 덕행들을 실천할 수 있게 하는 근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교회 학자들은 이 자애심의 포기를 ‘거룩한 포기 (Holy Abandonment)'라고 정의 합니다. 하면 이 ’거룩한 포기 (이탈, 자애심 포기)‘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궁극적인 우리의 목표인 성화와 더 나아가 우리의 구원은 두 주체의 완성품이라고 합니다. 첫째는 절대적으로 하느님께서 활동하심이요 둘째는 그 활동하심에 대한 우리자신들의 협조가 바로 그 두 주체인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의 신성한 뜻과 우리 인간과의 끊임없는 조화를 의미하며 이로써 하느님과 함께 작업하면 우리가 점차적으로 덕행을 쌓아나감에 발전이 있게 되는 반면 자신의 노력에만 의존하는 사람들은 다시 쉽게 죄로 빠지거나 설상 잘 되어가다가도 이내 지쳐버리게 되며 이로 인해 아무 소득 없는 마음의 동요만을 일으키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성화작업에 동참 하실 수 있게 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분의 원대한 계획을 손수 이끄시도록 우리가 허락을 하여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모든 사물들의 알파요 오메가(시작과 끝) 이신 그분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고 또한 오로지 당신의 뜻만을 완성하기위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하지만 이 하느님과의 공동사업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우리 자신들이며, 다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당연히 받으셔야 할 영광, 그리고 우리를 이롭게 하시면서 이를 즐기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녀 대 데레사께서는 ‘이 진리를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기도에 전념코자 시작하는 분들은 제일 먼저 용기를 가지고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여러분들의 뜻을 하느님의 뜻에 맞추어 따르려 해야 합니다.  영성생활의 가장 탁월한 완성은 바로 이 일치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무슨 비밀이나 극히 뛰어난 비법에 우리 영성의 발전이 달려 있다고 상상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우리 영성생활의 진보는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얼마만큼 잘 일치시키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라고 가르치십니다.


또한 살레시오 성인의 “하느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나와 같이 사랑하는 그 이외의 어떤 완전함은 알지도 못하고 이해도 못합니다.‘로 시작되는 ’하느님의 뜻”에 관한 가르침을 알퐁소 성인께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모든 덕행의 완성, 그리고 성화는 하느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시고자 하시는 당신의 뜻을 완성하는데 있습니다.  성화되기를 원하면 절대로 나 자신의 뜻을 따르지 말고 거룩한 분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뜻하시는 것을 모두 실천하고 내 뜻은 하느님께서 역사하심 그 자체가 되어버리면 됩니다.’


이 거룩한 포기를 가장 완벽하게 실천하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지요.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보면 ‘다 이루었다’ 라는 말씀은 바로 ‘나의 아버지, 저는 당신께 대한 사랑으로, 가능한 저의 능력 최대한으로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습니다.  매사 모든 일에 당신의 뜻에 한치도 어긋나지 않게 티끌먼지 만큼의 실수도 없이 이루려 했기 때문에 이제 당신의 구원 사업을 완성합니다’ 라는 말씀으로 해석 할 수 있겠습니다.


16세기 초기에 이탈리아의 도미니칸회 수녀였으며 40여년간 매주 금요일이면 예수님의 오상은 물론이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내적으로 체험했던 복녀 Stephanie Soncino가 하루는 천사들의 인도로 영적 들림을 받아 천국을 방문하는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상에서 살다 타계한 지인들을 만났는데 그 지인들이 세라핌 천사의 반열에 올라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안내 천사에게 이분들이 어떤 공로로 천상에서도 높디 높은 이곳에 사는지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천사의 대답은 지상에 살면서 얼마만큼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며 살았는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라고 하였답니다.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며 사는 방법을 사도 바오로께선 이렇게 가르치시지요.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 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 할 수 있게 하십시오‘ 

                        --로마서 12,2


‘여러분이 모든 영적 지혜와 깨달음 덕분에

하느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져,

주님께 합당하게 살아감으로써 모든 면에서

그분 마음에 들고 온갖 선행으로 열매를 맺으며

하느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기를 빕니다‘

                        --콜로새 1,9-10



산상설교 말씀으로 예수님께선 우리가 지향하여야 할 목표 설정과 세부 지침서까지 내려  주셨으니 ‘거룩한 포기’,  ‘자애심으로부터 이탈’을 시작으로 나는 없어지고 오로지 주님께서 내 안에, 또한 내가 주님 안에 있을 수 있는 일치로 향해 매진하면 예수님 말씀대로 우리도  하느님의 자비를 입게 되고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며 하늘나라가 우리의 것이 되고 궁극에는 하느님을 뵐 수 있는 ‘행복한 우리’가 될 수 있음을 확신 합니다. 


우리의 목표를 향해 달림에 있어 현 생활에서 직면할 수 있는 많은 걸림돌 때문에 주춤하게 되고 영성생활에 진전이 없다고 생각될 때 마다, 그리고 매일 매일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때 마다 다시 한번 이 황금율의 말씀 (마태복은 7장 12절, ‘그러므로 남이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을 얼마나 잘 실천하고 있는지를 자성해 보면 바로 나 자신이 하느님의 뜻에 나의 뜻을 어느 정도 일치 시키며 살아가는지의 척도가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