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겠습니다.


저희들을 끔찍이도 사랑하시는 주님, 이 홈페이지를 접속하는 모든 분들에게 당신의 평화를 한 사람 한사람 안에 불어 넣어 주시며 마음의 등불을 밝혀주시어 당신의 말씀이 살아서 움직이며 그대로 실천하는 저희들이 될 수 있도록 은총 주시옵소서.  또한 저희들을 통해 당신 성심의 지향들이 그대로 이루어 질 수 있게끔 저희들을 준비시켜 주시며 지혜주시고 언제나 성령님의 인도의 끈을 놓치지 않는 겸손한 저희 자신들이 되고 항구함과 충실함으로 온전히 당신을 신뢰하며 봉헌의 삶을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실천하고 당신을 더욱 사랑하여드릴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우리는 살면서 종종 나 자신이 믿음으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어떠한 두려움에 인해 그에 종속되어 살고 있는지 성찰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사느냐 아니면 두려움으로 사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가 선택하기 나름이며 한 가지 알아야 할 점은 믿음이 있다면 이 믿음이 두려움을 어찌 대처해 이겨 나갈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준다는 사실입니다.


굳건한 믿음으로 출발은 하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두려움으로 인해 우왕좌왕하는 좋은 예가 성경말씀에 잘 묘사 되어 있습니다.   탈출기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탈출기 14장 10-14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눈을 들어 보니, 이집트인들이 그들 뒤를 다가오고 있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몹시 두려워하며 주님께 부르짖었다. 그들은 모세에게 말하였다. “이집트에는 묏자리가 없어 광야에서 죽으라고 우리를 데려왔소?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이렇게 만드는 것이요? ‘우리한테는 이집트인들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나으니, 이집트인들을 섬기게 우리를 그냥 놔두시오’ 하면서 우리가 이미 이집트에서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소?‘  그러자 모세가 백성들에게 대답하였다. ”두려워 하지들 마라. 똑바로 서서 오늘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루실 구원을 보아라. 오늘 너희가 보는 이집트인들을 다시는 영원히 보지 않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너희를 위해 싸워 주실 터이니, 너희는 잠자코 있기만 하여라.



이 다음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는지는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이집트 파라오의 완고한 마음을 결정적으로 꺽게 되는 또한 파스카 축제의 시발점이 되는 주님의 열 번째 재앙, 즉 이집트의 맏아들과 맏배의 죽음을 목격한 이들이었고 그 이전의 아홉 가지 재앙도 다들 목격 함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모세의 인도 하에 이집트를 떠나지만 막상 홍해 바다 앞에 다다르자, 뒤로는 그 당시 막강한 군대를 가진 파라오가 쫒아오고 양편으로는 산으로 막혀있고 앞으로는 바다가 막고 있으니  처음 가지고 출발 했던 믿음은 거품처럼 사라지고 막 닥칠 것만 같은 죽음에 대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무서운 공포와 두려움이 위의 말씀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 신앙인으로써 어떻게 두려움에 대처 하여야 할까요?  먼저 두려움이 우리에게 악 영향을 주는 네 가지를 이 성경말씀을 통해 알아봅니다.


1. 두려움은 우리자신을 회의적으로 만듭니다.

 

탈출기 14장 11절에 잘 묘사되어 있듯이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의심을 하게 시작하고, 비아냥거리고 냉소로써 일관 하게 합니다. 또한 자신이 지금까지 가져왔던 신념이나 확고하다고 생각 했던 것들에 대해 의심의 마음이 서서히 자리 잡게 합니다.  


2. 두려움은 우리들을 이기적으로 만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왜 자기들을 내버려두지 구태여 자신들을 끌고 이집트를 나왔냐고 모세를 비난 하지요? 출발 시에는 자신들이 동의 하여 자발적으로 모세를 따라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이 이들을 이기적으로 자기위주로 생각하게 만들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 하게 하는 겁니다. 


3. 두려움은 우리를 완고 하게 만듭니다.


12절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차라리 광야에서 죽는 것 보다 그냥 이전처럼 이집트인들을 섬기는 것이 더 낫다고 외칩니다. 지긋지긋하고 넌더리가 날만큼 인간이하의 동물 취급을 받던 노예 생활을 탈출하고자 떠났음에도 말이지요.  이처럼 두려움은 우리를 완고 하게 하여 우리가 변화되는 것을 못하게 가로 막습니다.  혹시 부부간이나 친구들 중에도 자신의 실수나 과오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분을 간혹 만나실 겁니다. 그러한 분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바로 이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어 자신들을 그렇게 완고 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4.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좁은 안목과 얕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과거의 혹독한 노예의 생활의 비참함을 잊었듯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아픈 기억을 잊게 하고 다시 그 아픔으로 돌아가게 하며 우리가 위험을 무릅쓰는 것을 막습니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약점들을 알면서도 그대로 고수 하는 편이라고 하는데 이는 자신이 변함으로써 오는 확실치 않은 미래에 대한 위험 부담을 떠안기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 까요?



위의 성경말씀은 두려움에 의해 회의적, 이기적, 완고함, 좁은 안목을 가지게 되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기적을 체험하는 것을 앗아갈 수 있음을 가르칩니다.  무서워 떨며 허둥대는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모세는 오히려 반대로 침착하지요?  아마도 이전 40년간 광야에서 살면서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려움을 어찌 대처해야 하는지 모세는 다음 세 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 두려워 말라.


성경말씀에 ‘두려워 말라’라는 구절이 365번 나온다고 합니다. 우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일년이 365일이니 단 하루도 두려움을 가지지 말라는 주님의 뜻이 아닐까요?

어떻게 하면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 있을까요. 이는 바로 하느님이 우리의 삶을 관리하시고 통제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깨닫는데 있습니다. 나의 싸움은 바로 하느님의 싸움이요 가장 안전한 곳이 하느님 뜻 안에 머무르는 것임을 인지하는 것이지요.


누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그들에겐 죽음의 사지로 비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았을까요?  그들이 책임을 전가 하려 했던 모세도 아니었고 바로 하느님이셨습니다.  함정으로 몰은 것 같은 형상 이었지만 이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기적을 보여주시기 위해 하신 일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들처럼 우리 삶에서 막다른 홍해 앞에 서게 되는 경우가 있을 때 다음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언제 어디로 우리를 인도하실 땐 그전에 이미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일을 시작하십니다.  마치 우리의 눈에는 우리가 헤어 나오지 못할 수렁에 당신께서 우리를 빠지게 한 것 같아도 그분께서는 소매를 겉어 부치고 역사하실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바로 13절의 말씀처럼 첫째는 하느님 당신의 영광을 즉 온 세상에 과연 누가 주인이신지를 드러내려 하심이고 둘째는 우리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입니다.


2. 똑바로 서서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올려보라.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집중하여야 합니다.  성경 말씀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러했듯 우리도 어려운 문제에 부딪쳐 당혹하면서 좌, 우, 앞, 뒤만을 살피며 내 의지와 능력으로 해결해 보려 버둥거리던  경험들이 있으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처한 문제들이 우리의 눈으로 보면 클지도 모르나 하느님의 눈으로 한번 바라보면 아무 것도 아닌, 오히려 하느님께선 이를 기회로 여기시는 문제들 일 수 있습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대신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지시 한 것과 같이 오히려 똑바로 서서 하느님을 향해 올려 다 본다면, 하느님께선 ‘나를 바라보아라, 내가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 너는 그저 보기만 하여라’ 라고 하실 것 같습니다.


3. 굳건히 앞으로 나아가라.


15절의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일러라’ 라고 하신 하느님의 말씀처럼 우리도 믿음으로 전진하면 됩니다. 자동차의 변속기어를 바꾸듯 우리 마음의 변속 기어를 바꾸어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기도를 해야 할 때가 있고, 단식을 해야 할 때가 있고, 그저 침묵 속에 조용히 기다려야 할 때가 있듯이 과감히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궁극적인 지향이 바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일 것입니다. 사전에 보면 믿음이 명사로 분류 지칭 되지만 신앙인의 눈으로 보면 동사에 해당 합니다. 왜냐면 두려움에 과감히 맞서 싸우며 전진하는 것이 믿음의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 두 가지의 두려움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하나는 높은 곳에서 떨어질까 봐 하는 두려움, 그리고 다른 하나는 큰 소리에 놀라는 두려움이며 우리가 느끼는 다른 모든 두려움 들은 성장하면서 배워 알게 된 것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타고 나지 않은, 즉 우리가 배워 알게 된 여타 모든 두려움들은 다시 잊어버리면 되는 것으로 과감히 이에 맞서 대항하면서 위험 부담을 안고서라도 믿음을 실천하면 우리 눈 앞에서 그 두려움들이 어떻게 잘 관리가 되는지 직접 목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13절 말씀 ‘오늘 너희가 보는 이집트인들은 다시는 영원히 보게 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신 말씀처럼 말입니다.


믿음은 진실을 믿는 것 그 이상으로 그 진실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데 있다 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아플 때 의사의 처방전 (글씨를 잘 알아 볼 수 없는)을 받아 들고 약국으로 가서 약사에게 건네준후 약을 받아와 지시대로 꼬박 꼬박 먹는 것은 우리가 의사와 약사를 신뢰하고 믿기 때문 아닙니까?  하물며 우리를 끔찍이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상황이던 그 결과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선익을 위한 것으로 만드시지 않겠습니까? 


구전에 의한 설에 의하면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바다위로 손을 뻗었을 때 바다가 갈라진  것이 아니라 모세가 손을 뻗은 상태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실지로 발을 내디뎠을 때 그리되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과감히 전진하였던 이스라엘 자손의 행위 즉 믿음을 강조하기 위한 예가 아닌가 생각 됩니다.  예수님을 보고 베드로가 배 밖으로 나와 물위를 걸어 예수님께로 가다 바로 두려움이 결국 그를 물에 빠지게 하지 않았습니까?



이상의 세가지 행동지침대로 ‘두려워하지 말고, 침착하게 똑바로 서서,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올려다보며, 확고한 믿음으로 앞으로 전진하는 참된 신앙인의 자세를 가지고 실천한다면 홍해가 갈라지며 자신들을 무사히 구출하셨던 하느님의 기적을 체험했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렇했듯 우리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떻게 일을 처리하시는지 우리는 그저 보기만 할 수 있는 영광을 허락 하실 것임을 확신합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성찰하며 명사가 아닌 현재 진행형 동사의 의미의 믿음의 생활을 다져 나가야 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