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합시다.


저희들을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항상 저희와 같이 계셔주시겠다고 하신 주님, 지금 이 시간 작고도 보잘 것 없는 이 홈페이지 접속하는 모든 이들 마음 안에 오시어 함께 하여주시옵소서.  당신의 성령의 불꽃을 저희 한 사람 한 사람 마음 안에서 태우시어 당신 말씀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 또한 주시옵소서. 그리함으로써 저희들의 진정한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확고하게 알게 하시며 이를 향해 매진 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될 수 있는 은총 주시옵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소리내어 우시면서 흐느끼셨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루이사 피카리타)


“인간의 죄들이 내 손에서 재앙을 앗아간다. 그래서 나는 마지못해 하는 수 없이 재앙을 허락하지만, 동시에 피조물과 함께 울며, 고통을 받는다. 사람들이 죄로 극단에 이르러, 나를 너무도 고통스럽게 한다. 인간들이  나에게 징벌을 내려 달라고 강요한다.


나는 이제껏 참아 왔으나, 이제는 때가 되었다. 그래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날 것이다. 예기치 못한 돌발 사건들이 여기저기서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이고, 인간들은 한 층 더 당황하게 될 것이다.“ 이상은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비 해야겠습니다. 그동안 죄를 깊이 정화 하면서 하느님의 뜻대로 살던 사람들에게나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재앙이 일어날 때, 하느님의 자비의 기도와, 묵주의 기도를 끊임없이 하십시오. 공동체가 함께 하면 더욱 기도의 힘이 강합니다. 지향은 우리의 죄 보상과 하느님의 자비를  간절히 비십시요. 그리고 공동체 기도회를 지속적으로 하시면 서 함께 기도들  하십시요.


죄를 깊이 정화 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 따라 살지 않던 사람들 은, 고백성사를 자주 보면서, 빨리 죄를 깊이 통회 하고, 죄를 끊으면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십시요.(메주고리에서 주신 성모님의 5가지 메시지).  그리고 묵주의 기도와 하느님의 자비의 기도를 최소 하루에 15단씩 하면서 빨리 깊은 기도 생활로 들어 가십시요.


예수님의 예언이 날로 강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봅니다.'





이달은 다음의 요한복음 말씀을 같이 묵상하고 나누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4:1-7


“너희는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겠느냐?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지금과는 달리 모든 장거리 여행을 기차로 이동을 해야만 했던 시절에 그 당시 아주 유명하고 존경을 받았던 미국의 어느 나이 많은 법관의 이야기입니다.  무척 영리하고 법에 관한한 철저하게 일을 처리하기로 명망이 높았던 그분은 한 가지 단점이라면 그 외의 일들에는 항상 잘 잊어버리는 습관이 있었답니다.  하루는 기차로 다른 도시로 가고 있는 중 재판에 관한 서류, 법률에 관한 책 들을 펴놓고 기차 안에서 열심히 재판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역무원이 기차표를 확인하고 확인의 표시로 표에 구멍을 내지요?  차례로 일을 마치던 역무원이 드디어 그 법관이 앉아서 일을 하고 있는 자리까지 왔습니다.  그 법관은 기차표를 주려고 무의식 적으로 바지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으나 표가 없는 거예요.  황당해진 그는 가방이며 외투, 양복 주머니란 주머니는 다 뒤져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주 난감해 하는 그에게 역무원은 ‘법관님,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  기차 삯 걱정은 하지마셔요.  목적지에서 내리신 후 나중에라도 찾으시면 저희 기차회사로 우송해 주시면 됩니다.’ 라고 하자 그 법관 왈 ‘아이쿠 정말 큰일 났구먼,  젊은 친구, 그게 문제가 아니고 그 표가 없으면 내가 어느 정거장에서 내려야 하는지 알 수 가 없거든......’



우스개 같은 이야기 이지만 배울 점이 있어서 같이 나누어 보려 합니다.  서두의 성경말씀에도 토마스가 3년이나 예수님과 함께 살았으면서도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묻지요?  그렇다면 지난 수년, 아니면 수십 년 신앙생활을 해온 우리는 어떨까요?  과연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또한 우리로 하여금 어디로 가시기를 원하시는지 잘 알고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교리문답에 ‘왜 하느님이 나를 만드셨는가’ 라는 질문이 나오지요? 우리 모두 세례 받기전 교리공부 할때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1. 하느님을 알게 하시려고.

2. 하느님을 사랑해 드리려고.

3. 하느님께 봉사하며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그리고 천국에서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 위하여.



바로 이 대답들이 우리 삶의 목표요 예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가기를 원하시는 그 ‘어디’일 것입니다. 이어지는 요한복음 말씀 11절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12절 말씀에는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라고 하신 말씀처럼 주님께선 우리에게 확고한 목표설정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우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많은 덕행들, 사랑, 애덕, 의덕, 정화, 성화 등등 이 모든 덕행의 실천들이 바로 우리의 목표을 향해 바로 갈 수 있도록 하는 도우미 역할이겠지요.


우리는 우리가 이 거룩한 목표를 깨닫고 있고 그리 되도록 우리 생활에서 실천하는지를 자주 성찰하지 않으면 그리고 우리 삶이 이 목표를 향해 이끌어지지 않으면 방향을 나도 모르는 사이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쉬운 예로 우리가 자동차를 운전 할때 운전대만 잡고 운전 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고 있는 자동차의 먼 앞과 뒤 그리고 좌우측을 항상 미리 미리 잘 파악하고 주의하지 않으면 사고가 날 확률이 많고 그 때문에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없듯이 우리의 삶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를 알고 이를 향해 실천함으로써 우리 생활에서 얻게 되는 일곱가지의 축복과 은총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첫째는 ‘우리 삶의 참된 의미와 희망을 심어줍니다.’


이 목표를 나에게 설정한 이유, ‘왜’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누구와, 언제,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이런 모든 나의 생활에 연결된 상황들에 잘 대처 할 수가 있게 됩니다. 격언에도  ‘대처(극복) 하기 위해서는 희망이 필요하다’ 라는 말이 있듯이 이 ‘왜’를 모른다면  조그만 어려운 일이 닥쳐도 우왕좌왕 하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 매사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려 결국은 포기하고 심지어는 희망까지 잃어 버리게 됩니다.



둘째는 ‘우리 삶을 간단하게 합니다.’


우리가 해야 될 것과 하지 말아야 될 것을 쉽게 결정지어 줍니다.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하시고자 하시려는 그분의 뜻을 충족시키는데 도움이 되는가만 항상 나 자신에게 진솔하게 물으면 됩니다.  정답이면 그대로 행하면 되고 아니라고 양심이 내게 말한다면 그 즉시로 중단하면 되니까요.   내가 확실한 목적과 목표를 모르면 매사 결정을 내림에 있어 주변 상황이나, 기분, 감정 등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며 이리되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하다가 궁극에는 지쳐버리고 스트레스만 쌓이며 짜증으로 이어져 쉽게 다른 사람과 마찰을 빚고 자기 자신도 들볶아 대는 지경에 이르겠지요.  이와 같이 간단한 삶을 살게 되면 이는 바로 ‘마음의 평화’로 이어집니다.






세째는 ‘욕구 불만이나 좌절감을 줄여줍니다.’


삶의 확실한 목적과 목표를 모르면 무슨 결정을 할때 그 바탕이 되어줄 근원이 없게 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를 기억해보면 우리 가치관 설정에 있어 학교 선생님이나 부모님 그리고 다니고 있던 종교 단체의 지도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기준이 서로 거의 비슷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세대는 신문, 잡지, 텔레비전, 인터넷 등등 갖가지 매체를 통해서 도대체 어느 누구 말이 옳은지 혼동되는 정보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저 ‘다만 내가 하는 이 행동이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일들에 도움이 될 것인가?’ 라는 이 간단 명료한 이 결정의 기본을 항상 우리 생활에서 자문 한다면  욕구 불만이나 좌절감이 줄어들 것입니다.



네째는 ‘하고 싶은 결의나 의욕을 증가 시켜줍니다.’


내 인생의 목적과 목표를 이해함으로써 주의의 환경에 영향을 받아 이리저리 흔들리는 결정을 하지 않고 실천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흘러넘치는 에너지를 보여주게 됩니다. 이 흘러넘치는 에너지를 수반한 의욕, 열심, 열중, 열의를 영어로는 Enthusiastic 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의 어원인 그리이스어로는 Enthousiasmos 즉 En(안에서)thous(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을 안에 모신, 하느님께 속한으로 뜻 풀이가 됩니다.  에페소서 3장 12절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확신을 가지고 하느님께 담대히 나갈 수 있습니다’ 라는 말씀처럼 하느님께로 가는게 우리 목표가 되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안에서 즉 Enthusiatic 한 삶을 사는 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우리의 에너지와 노력을 삶에 가장 중요한 일들에 집중 시켜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찮은 일들에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는 것들을 종종 보실 겁니다. 직장도 이렇게 저렇게 바꿔보고 친분을 쌓는 사람들도 무수히 바꾸어보고 이것저것 해보며 자신의 공허함을 메꾸려 하는 분들의 문제는 그 분들의 주위 환경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신 안에 내적 상태, 즉 삶의 목적과 목표 설정을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목적과 목표야 말로 돋보기를 여과한 햇빛이 그 집중력으로 종이를 태워 버리듯이 우리 자신을 삶에 가장 중요한 일들에 집중 시켜줄 것입니다.  ‘여러가지 조잘하고 좋게 생각되는 많은 일들을 하려고 하는 것들이 가장 최고의 좋은 일을 하고자 하는데 방해가 되는 제일 큰 적이다.’ 라는 어거스틴 성인의 말씀처럼 우리가 절대로 삶의 초점을 잃어서는 않됩니다.



여섯째는 ‘우리에게 협조와 도움을 이끌어 냅니다’


미끄러운 얼음판위에서 여러명이 서로 팔짱을 끼고 걸으면 어느 한사람도 넘어 질 수 없게 서로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지요.  이처럼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주님의 작은 일 부분 지체가 되어 서로 격려와 기도로써 서로의 목표가 같음이 이 협조와 도움을 이끌어 낸다는 말씀입니다.



일곱째는 ‘우리가 맨 마지막에 치르게 될 시험을 준비시켜 줍니다’


이 세상에서 제 아무리 많은 치적을 쌓고 유명한 사람들도 여기를 떠날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으며, 또 세월이 많이 흐르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요. 명성과 재물이 주님의 옥좌 앞에 서서 심판을 받을 때 아무 도움이 되지 않고 오로지 나를 변호 할 수 있는 건 나 자신 뿐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목표를 향해 그만을 위해 집중하며 매일을 살아간다것이 바로 그 시간이 왔을 때 아무 걱정이나 두려움 없이 시험을 치를 수 있게 하여주는 준비 과정이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  말씀과 같이 우리의 목표을 향해 매진하며 언제나 하느님 안에서 굳건한 신앙으로 매일 매일 살아가도록 노력 합시다.  그리고 14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이를 믿고 언제나 내안에 주님께서, 주님 안에 내가 있는, 일치의 삶을 항구하고 충실하게 살 수 있도록 주님께 그리고 성령님께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