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합시다.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으로 항상 저희 곁에서 저희를 지켜주시고 양육하여 주시는 사랑의 하느님, 그동안 온 인류에게 내려주신 당신의 은혜에 감사와 영광과 흠숭 드립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귀한 자녀들을 성모님과 함께 당신께 봉헌합니다. 이들 안에서 그리고 이들을 통하여 당신의 사랑의 뜻을 완성하시고 저희가 당신의 뜻대로 남은 인생의 길을 잘 걸을 수 있는 모든 은총으로 저희를 축복 하여 주십시오.

성령님이시여, 당신의 빛과 능력으로 이 글을 통하여 저희를 계속 가르쳐 주시고 깨달음 주시고 하느님의 뜻대로 잘 따라 살다가 이 험한 나그네 길을 잘 마치도록 인도 하여 주소서. 저희를 통하여 이 글을 통하여 많은 영혼들이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 올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큰 영광과 감사 받으소서. 아멘.
 
이 시대에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뉴스를 보면 세상 어느 구석에 있든 모든 인류는 하느님의 통제 안에서 생명을 유지 하고 있으며 하느님을 떠나서는 살수 없다는 것을 여러 가지 표징으로 보여 주시고 계십니다. 사랑과 자비에 찬 하느님의 부르심이 이제 온 우주를 울리며 우렁차게 울리고 있습니다. 생명을 유지하기를 원하면 이제 하느님께 빨리 돌아가서 그분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고 매순간을 그분 곁에서 그분의 도움을 받으면서 생명을 살아가야 할 때임을 알리십니다. 이 길에서 우리와 하느님 사이를 막는 것들 중에 가장 무섭고 파괴 작업을 하는 것은 죄들의 독입니다. 영성생활을 이미 시작한 신자들에게는  소죄들의 독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즉 은총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대죄는 죄라는 것을 알면서 피합니다. 그러나 소죄들에 대하여서는 그것을 그리 중대시 않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죄라고도 생각을 하지 않고 아예 피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삽니다. 그러다 보면 이것들이 습관이 될 정도로 몸에 배어 살게 되니 소죄의 벌레들은 영혼에 찰싹 붙어서 그들의 독을 우리의 영혼 안에 불어 넣으면서 파괴 작업을 마음 놓고 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의식 못하게 무섭게 더욱 큰 해악을 끼치는 독들이 소죄들입니다. 
영성 생활, 즉 하느님을 따라가는 길에서는 정지라는 것은 없습니다. 앞으로 계속 진보 하지 않으면 뒤로 계속 후퇴합니다. 정화 작업과 성화 작업에는 쉼이 없이 계속 진보 하거나 계속 뒤로 후퇴합니다. 여기서 계속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어느 영성가는 대죄에서 회개하는 사람들이 은총지위에서 진보하는 이들보다 더 많다고 말하였습니다. 즉 소죄를 끊으면서 회개에로 진보하는 사람들은 극히 적고 대죄에서 회개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소죄를 끊는 작업들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은총지위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열심히 따라가면서 기도도 열심히 하고 거룩해 지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바램입니다. 이 바램들은 바램에서 멈추고 의지까지 가지 않기 때문에 의지적 행동을 하지 않아서 그 바램이 많은 이들 안에서 이루지지 않습니다. 소죄를 끊기를 바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습이 된 소죄들을 끊어야겠다고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바램에서 멈추고 의지로 이어지지 않아서, 의지적 행동으로 끊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것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악습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그것들을 가슴에 안고 삽니다. 예를 들어, 격한 성격, 감정 폭발, 싸움, 미워함, 질투, 악평, 게으름, 우유부단, 다른 이들을 마구 다름, 그 이외에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기도 할 때 ‘하느님, 저도 다른 사람처럼 당신을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당신을 사랑하는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 합니다. 똑 같은 기도를 매번 합니다. 그래도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진전 없이 똑 같습니다. 그 이유는 그 기도들이 바램이었으나, 그 바램이 바램에서 그쳐 버리고, 의지에 가서 의지를 움직이는 의지적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측에서 우리가 해야 할 몫을 최선을 다 하여 작업을 해야 하느님께서도 당신의 몫을 하시는데, 우리가 우리의 몫을 하지 않고 말로만 하니까 하느님께서 역사 하실 수 없습니다. 소죄 정화작업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측에서 우리의 최선을 다 하여 이 작업을 한다면 하느님께서는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다음 단계에서 더 한 단계 높이 이렇게 은총을 주시면서 계속 당신께 이끌어 올려 주십니다. 이것을 간절히 바라시는 분도 하느님과 성모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 측에서 작업이 없는 바램뿐이기 때문에, 그 바램은 항상 제자리에 있을 뿐, 기도도 아무런 영향이나 진보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기도는 아무리 하여도 효과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행동이 없는 말에서 끝나거나 의지의 결심과 그에 따르는 작업이 없기 때문에요.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소죄가 얼마나 무서운 걸림돌이요 방해물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들 중에 많은 이들이 그 소죄들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있어도 그것이 생각에서 머물고 의지를 움직여 작업을 해야 하는 부분을 소홀히 하거나 생략하기 때문에 많은 신자들이 하느님에 대하여 높은 지식을 갖고 있고 하느님에 대하여 유창하게 말하고 훌륭한 가르침을 하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많은 일들을 하지만, 실제로는 그 영혼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은 소죄를 끊는 작업을 소홀히 하거나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성생활에서 하느님께 가까이 가고 있는지는 마음이 소죄에서 얼마큼 깨끗이 씻겼느냐에 달렸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되는 일들에서 즉 기도나 성사생활이나 신심생활에서 하느님과 가까워지는데 있어서 진보가 없을 때는 마음의 정화가 필요함을 알려줍니다. 

저는 하나의 예를 들어 이것을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아쉬움 없이 잘 사는 우리 부모님의 집은 서울에 있다고 가상 합니다. 부모님의 지배 밑에 살기 싫고 자기 좋은 대로 살려고 집을 떠났습니다. 집을 나와서 돌아다니다가 서울에서 먼 부산까지 왔습니다. 부모님을 멀리 떠난 부산에서 살다 보니 부모님의 곁을 떠나서 혼자의 힘만으로는 살수 없다는 것을 많은 힘겨운 일들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자기를 손꼽아 기다리시는 부모님께 돌아가기로 마음을 결심하고 부산에서 서울을 향해 떠났습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어가야 합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걸어서 부산에서 대구까지 갔습니다. 그곳에 도착 하여 보니 사람들이 모여 텐트를 치고 사는 곳이 있어 들려 보니까 살만 하여 그 사람들 틈에 끼어 텐트 밑에서 삽니다. 그러나 비바람이 불 때나 천둥 벼락을 할 때는 서울에 있는 부모님의 집 생각이 나서 서울로 가야지 하는 생각을 또 다집니다. 그러나 비바람이 그치면 또 부모님을 잊어버리고 그대로 대구에서 머물게 되곤 합니다. 이렇게 여러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결코 서울에 있는 부모님의 집에 가야 살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실제로 그 생각을 의지까지 옮겨서 의지가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데 그 부분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대구에서 주저앉아서 하루 하루 생활 합니다. 

영성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집에 가야 하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걸어가야 합니다. 긴 여정, 그리고 어려운 고비들을 거쳐서 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집까지 갈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 나그네살이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대죄를 겨우 정화 한 상태, 즉 서울을 향하여 부산에서 겨우 떠났습니다. 그러나 소죄상태에서 그냥 하루하루 세월을 보내면서 삽니다. 서울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데 생각뿐이지 의지적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가야할 서울에는 가지 않고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대구에서 주저앉아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고의 적인 소죄를 끊지 않고 소죄 상태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끊어야지 하고 생각은 하지만 그 생각이 의지까지 가지 못하고 끊는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소죄들은 성장하고 번성하고 뿌리가 깊어져 악습이 되어 버립니다. 그때쯤은 그것을 끊어야지 하는 생각조차 없어져 버리고 습관이 되어 버립니다. 이제 영혼은 자신이 의식도 못하면서 하느님께로부터 점 점 더 멀리 떨어져 나갑니다.

이런 사람들이 신심행위를 바삐 하지만 실제로는 하느님과의 관계는 거의 끊어진 상태가 되었거나 이미 떨어진 상태에서 합니다. 이제 하느님의 음성도 들을 수 없고 하느님의 빛이 흐려져 옳은 판단을 할 수 없고 양심은 무감각하게 되어 죄가 무엇인지 조차 생각하고 싶지 않고, 이제 본능 따라 세속 따라 살다가 대죄에 쉽게 떨어져서 그 안에서 살게 됩니다. 

열심했던 사람들이 영원한 불속으로 떨어지는 경우들이 소죄를 끊는 작업에 소홀하거나 항구하지 않아서 하느님께로부터 아주 멀리 그리고 영원히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깊이 회개 하고 높은 경지까지 올라가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던 사람들도 소죄 끊기를 철저히 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잠시 멈추게 되면 그곳에서 멈추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소죄 때문에 파괴되는 영혼들과 똑 같은 과정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죄는 천상의 도움으로만 볼수 있고 죄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천상의 도움은 기도의 힘으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가 약해지면  소죄 정화작업도 약해짐을 명심해야 합니다. 소죄 정화 작업에서도 멈춤이 없습니다. 계속 진보 하지 않으면 후퇴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영적 저능아들이 되면서 그 안에  유혹자의 교만이 쉽게 들어갑니다. 그러면 교만의 힘으로 다른 이들 보다 더 급속도로 후퇴하여 큰 불행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나아가려는 사람들은 소죄를 끊는 작업이 대단히 중요함을 명심하고 성찰 해야 한다고 영성가들은 말합니다. 

대 영성가이며 수도원에 대 아바스의 글을 옮깁니다. ‘침묵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라는 책에서 발췌하였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서 살기 위하여서는 모든 죄들, 대죄와 소죄들로부터 정화 돼야 한다.

대죄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한다. 소죄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단절 하지는 않지만 약화 시키고 느슨하게 만든다.'

소죄는 세상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람들이나 수도원에서 잘 어울려서 산다. 이런 사람들은 대죄를  무서워 피하지만 소죄에 대하여는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리 중요하게도 생각 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소죄들이 그들에게 더욱 위험한 독이다.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진보 하느냐 후퇴하느냐는 소죄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깊이 달렸다.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 그것은 작은 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거짓말들, 사람들에 대한 비평, 다른 사람들의 물건을 함부로 사용함, 미움‘……등 그 이외에도 많다.

고의적인 소죄는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 안에 흘러 들어오는 것이나 우리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고 하느님께로부터 보상을 받는 것을 지연시킨다. 그래서 우리 영혼은 하느님께로부터 은총과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하는 태도에서 게을러지게 만들고 그 대신 죄에 마음을 열게 만든다. 이것이 점점 깊어지면서 소죄를 쉽게 짓게 되고 이것이 습관이 되어 버린다.


우리의 판단력은 점점 흐려지고 믿음은 약해지고 본성과 본능이 고개를 들고 일어나서 그것들이 이런 사람들을 지배하게 된다. 그러면 하느님께 대한 마음과 열정은 식어지고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것들은 기억에서 점점 멀어지고 드디어는 사라진다. 이제 고의적인 소죄를 짓는 것은 습관이 되어서 죄라는 것조차 의식 못한다.


이쯤 되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기분과 성질나는 데로 화를 쉽게 내고 신경질을 내고 소리를 지르고 한다. 인내심이 없고, 자신의 판단이나 생각이나 말에서 사랑이 없다. 말을 조심하지 않고 감정과 기분이 움직이는 대로 자애심과 용서하지 않는 말들을 내뱉는다. 수다스럽게 되어 다른 사람들의 이름이 손상되는 일들이나 평판에 대하여서 경솔하게 다루며 마구 지껄인다. 다른 사람들에게 불친절하고 그 이외에도 많은 소죄들이 악습이 되어 그것들을 달고 산다.

이렇게 죄를 짓다가 고백성사를 볼 때는 잘못을 고백 하거나 잘못한 것을 인정하기도 한다. 통회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죄들에 대한 통회와 그 뿌리를 뽑으려는 결심이 굳지 않아서 똑같은 악습으로 돌아간다. 이것들이 자기 목을 매고 있는 연자 맷돌 이라는 것을 모른다. 자기 목에 걸린 이 소죄들의 연자 맷돌의 무게로 자기 영혼이 얼마나 빨리 빠지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고백성사에서 받은 은총을 이용하여 이 소죄들의 악습을 끊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이것을 하지 않거나 소홀이 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남용하는 것이다. 이 결과로 영혼은 점 점 더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져 간다. 전에 열심 하였을 때 느꼈던 하느님의 사랑이나 관계가 이제는 먼 옛날이 되어 버리고 다시는 찾을 수 없게 된다. 이제 하느님께서 자기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 조차 느끼지 못한다. 이제 하느님에 대하여 더 무관심하게 되고 하느님과의 관계는 미지근한 상태에서 찬 상태로 되어 간다. 이제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긴 듯 이제 하느님과 관계없이 혼자의 힘으로 산다. 영혼은 점 점 더 본성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게 되고 교만하게 된다. 이제 하느님과 자신 사이에 무엇인가 들어와 꽉 자리를 잡고 있어 하느님과의 관계가 막혀지는 것 같다. 

이것이 영혼들이 소죄를 통하여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는 보통 과정이다. 또 영혼이 습관적인 소죄들 때문에 파괴되는 일반적인 역사이다.
 

죄는 하느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죄는 하느님께 반항하는 것이다. 죄는 하느님께 불순명 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거역하는 것이다. 죄는 하느님을 배신하는 것이다. 모든 죄는 하느님께
대항하는 것이다. 죄는 하느님을 거부 하는 것이다. 죄는 그의 결과로 오는 고통과 벌이 따르게 된다. 죄는 다른 이들에게 손상을 끼친다. 죄는 하느님과의 우리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거나 약하게 만들고 관계의 상처를 준다. 죄는 우리를 해롭게 한다.’ 이상은 대 아빠스 Baur 의 말씀 이였습니다. 

우리가 생활 하면서 자주 만나는 사람들 중이나 우리 자신들도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봅니다. 이 사람들은 소죄를 지으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신심행위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 하느님께 봉헌된 성직자나 수도자들, 열의를 다하여 하느님의 이름으로 봉사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이런 소죄의 그물에서 걸려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른 이들을 비판하는 사람들, 자기 감정대로 다른 이들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 다른 이들을 거칠게 막 다루는 이들,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사람들, 다른 이들에 대하여 투덜거리거나 험담을 하는 사람들, 싸우는 사람들, 다른 이들의 물건을 함부로 사용하는 사람, 남을 속이는 사람, 자애심과 이기심이 강한 사람들, 거짓말 하는 사람들, 다른 이들을 경솔하게 판단하는 사람들 , 다른 이들로부터 존경과 대접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 의무에 충실하지 않는 사람들, 거만한 사람들, 거짓말 하는 사람, 약속을 쉽게 하고 고의적으로 이행하지 않는 사람, 자기 편의대로만 하는 사람, 자기 뜻만 주장하는 사람, 사치 허영을 즐기는 사람들, 아첨하는 사람들, 다른 이들에 대하여 마구 말하는 사람들, 그 이외에도 수 없이 많습니다.

이달과 다음 달에는 자신을 소죄에서의 정화를 철저히 하고 있는지 성찰하고 작업하면서 다음 단계의 정화를 하시자고 초대 합니다. 


진보한 이들의 정화


첫째 방법

감각적인 모든 죄, 자애심, 진리가 아닌 모든 것, 시간낭비 하는 모든 것들,
은총을 고의적으로 낭비하거나 소홀이 하는 것과 관계되는 모든 것에서 정화 합니다.


두 번째 방법
자신을 하느님 보다 우선으로 하는 것들로부터 정화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선 나의 편리함과 나의 편함, 나의 만족, 나의 뜻, 나의 방법, 나의 취향, 나의 이로움을 하느님 보다 먼저 하는 습관들을 정화합니다. 이것들은 자애심과 이기심에서 나옵니다.  하느님과 관계에서 하느님 보다 이것들이 지배하기 때문에 하느님을 따라 가는데  큰 방해자가 됩니다. 신앙생활도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방법
파괴적인 악습들을 정화 합니다. 예로, 수다, 다른 이들의 말이나 행동을
 곡해함, 쓸데없는 생각들, 미래에 대한 집착과 애착, 끊임없는 걱정 집착, 미래에 대한 지나친 계획 등을 정화해야 합니다.  이것들을 전혀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자기의 힘만으로 완벽하게 하려하는 생각을 줄여서 자신의 최선의 노력을 하고 나머지는 하느님께 의뢰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자기가 완전히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걱정이 그치지 않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하느님께 다 맡긴다고 하고 하느님께서 다 알아서 해주신다고 하고 아예 자기는 노력도 하지 않고 게으름 안에서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둘 다 여기서 정화 돼야 하고 이것들에 ‘적절한 한계’를 둔다는 의미입니다.   


네 번째 방법
기분이나 성질의 기복을 따라 생각 하고 생활하는 것에서 해방 되도록 정
화되야 합니다. 성인들도 이것들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분이나 성질의 변화를 억제하고 의지로 통제하도록 노력을 하여서 이것들 때문에 잘못이나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정화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 방법
낭비에서 정화. 예를 들면, 하느님께서 주신 시간 낭비, 재물 또는 돈 낭비, 주
어진 은총 낭비, 주어진 탤런트 낭비, 에너지 낭비, 음식 낭비, 돈 낭비, 선행이나 자비의 행위를 할 수 있는 기회의 낭비, 하느님께 봉사 할 수 있는 시간 낭비에서 정화해야 합니다.


이것들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인간의 노력과 하느님의 도우심으로는 가능합니다. 또 이 뜻은 우리는 자주 우리의 생활을 성찰 하고 고백성사를 자주 보면서 끊임없이 정화 작업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단계를 거치지 않고는 아무도 하느님과 완전히 일치 할 수 없습니다. 죄가 없을수록 덕행 실천을 잘 할 수 있고 덕행 실천을 잘 할수록 하느님과 일치가 가까워지면서 영혼은 거룩하게 성화 됩니다.  


기도 합시다.


천상 어머니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끊임없이 봉헌하시는 당신의 희생과 기도와 사랑에 감사와 찬미 드립니다. 이 작은 글을 통하여 많은 영혼들을 하느님께 이끌어 주시고 그 안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곁에 계시고 저희를 위하여 항상 도와주소서.  사랑과 자비로 가득차신 천상모후 마리아님, 저희의 깊고 깊은 사랑 당신께 봉헌하면서 당신을 찬미 하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