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합시다


하느님, 우리의 주님, 우주의 창조주 하느님, 당신께서 인류에게 내려 주시는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에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와 찬미와 영광 드립니다. 인류의 영혼구원을 위하여 끊임없이 죄인들을 부르시는 하느님, 용서의 주님, 인류가 회개할 수 있는 자비를 계속 내려 주시고, 죄인들이 당신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게 만들어 주옵소서. 오늘도 보잘 것 없는 이 작은 홈페이지를 당신께 온전히 드립니다. 당신의 작업장소로 이용하시어, 당신의 뜻이 이 작은 홈페이지를 통하여 세상 곳곳에서 이루어져, 많은 위로 받으시고 사랑 받으시옵소서. 이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모든 이들과 작업하는 모든 이들을 성모성심을 통하여 당신께 맡깁니다. 온전히 주관 하옵시고 그들을 움직이시어 당신의 뜻을 이루시옵소서. 저희 인류를 겸손의 은총으로 치유하여 주옵소서.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옵소서. 이 홈페이지를 당신께 온전히 드리오니, 당신께서 역사하시고 시정하시고 정돈하시어 하느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천상의 작업장소가 되게 도와주옵소서. 당신의 겸손으로 인류구원에 동참 하셨듯이 저희에게도 겸손의 무기로 이 세상을 이기고 하느님의 뜻대로만 살 수 있도록 함께 하여 주옵소서. 이 홈페이지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옵소서. 아멘.


예수님께서 1975년부터 몬시니오 오따비오 미켈리니에게 주신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다.


-‘아들아, 이 말을 써라. 영혼들에게 기도와 속죄와 회개의 경향을 가지게 하는 것이 긴급하다. 이제는 그릇이 넘친다. 피가 사실 같지 않을 정도로 꽉 찼고 사람들의 눈이 어두워 무서운 큰 재앙의 전조를 보지 못하게 되지만 무너져 내리는 것은 벌써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이 미래의 큰 벌의 가능성을 확신하기에 이르지 못하고, 그것을 의심하는 사람도 많고, 또 많은 다른 사람은 숫제 그것을 부인하고, 큰 벌은 하느님의 자비에 반대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그들은 나의 자비와 정의가 같은 걸음걸이로 진행될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께서 분노하시면 무서우시다. 하느님께서는 사랑과 자비 밖에 없다는 편리한 생각에 의지하면서, 하느님의 분노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한다! 정말 타락한 이 세대의 사람들은 모든 것을 왜곡했고, 모든 것을 뒤엎으려고 시도한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은 이제는 말하지 않게 되었다. 하느님 사랑에 대해서는 말하지만 두려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데, 그것은 그들이 두려움은 사랑과 양립하지 않고, 또 양립 할 수도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리석게도, 자비와 정의를 양립 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이 하느님 사랑과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도 양립 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내게서 버림받은 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지옥은 자비에 반대되지 않고 정의에 합치한다.


-‘회개 하여라! 너무 늦기 전에 회개 하여라. 만일 너희가 무엇이 너희를 기다리고 너희 머리 위에 무엇이 매달려 있는지를 알면 너희는 견디기 힘들고 오래 걸리는 속죄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회개 하여라. 너무 늦기 전에 회개해라! 예수님이 너희에게 이렇게 호소하는 것이다.’


-‘정화의 바람이 벌써 불고, 이제는 하늘에 점점 더 어두운 구름이 뒤덮인다. 그리고는 천둥 치는 심한 비바람이 오고 폭풍우가 일어서 모든 것을 뒤엎을 것이다. 지금 내리덮으려고 하는 밤의 어두움에 수많은 영혼이 휩쓸려러  가지 않기 위해서는 즉시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참된 회개의 은총을 얻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기도를 하고 기도를 구걸해야 하고, 괴로운 체험과 곤란을 바쳐야 한다. 각 사람의 생활에 널려있는 고통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너그럽게 바치면, 그것들은 정말 은총과 자비의 누룩이 된다. 그러나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짧다.’  



-‘나는 유다 때문에 내게 대해 행한 그의 배반보다는 훨씬 더 그의 영혼의 멸망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느냐! 하느님의 위임을 저버리고 자기 자신도 타락하고 자기들과 더불어 많은 영혼도 타락시키는 내 사제들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통을 겪느냐! 사탄이 지배하는 해수욕장에서 어두움의 아들들과 언동이나 부도덕이나 악에 대한 경쟁을 하면서도,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은 없으니 이것은 하느님과 일치한 시간이 아니다. 자비의 시간이 정의의 시간에 길을 양보할 순간이다. 늦기 전에 회개 하여라. 내 간청을 비난 하지 마라.’


- ‘나와 일치하여 내 생활을 사는 거룩한 사제들, 착한 사제들, 정말 착한 사제들이 있다. 그들은 기도와 고통을 바치는 것으로 영혼들을 내게로 인도함으로 그들의 사제직을 열심히 행한다. 그들은 내 자비로운 마음에도 소중하고 나와 너희들의 어머니께도 소중하며, 내 특별한 사랑의 대상이 된다. 그들 때문에, 그들의 경건심 때문에 사람들이 많은 벌을 면하게 되었다. 그들은 내 보호를 보장했다. 한 자리와 한 월계관이 천국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 ‘또 다른 부류의 사제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착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내적인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하는 자만의 베일이 그들을 덮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그들에게는 참되고 진실한 겸손, 너희를 어린이들같이 되게 해야 하는 저 겸손이 없다. 겸손의 순박함이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아버지께서 아무것도 알리지 않으신다. 그들은 회개하기 어렵다. 그들의 교만은 정교해서 거짓 겸손을 가지고 산다. 이런 이들은 자기들 밖에 믿지 않고, 누가 그들보다 앞을 더 잘 내다보는 것을 무시하고 또 참기 어려워한다.


- ‘사제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 ‘성모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 ‘너희는 대환란기에 살고 있다. 대환란의 표징들로, 자연 질서의 붕괴가 증가하고 있다. 지진, 가뭄, 홍수, 수천 명의 사람을 뜻밖의 죽음으로 몰아가는 재난, 그리고 도처에 창궐하는 전염병과 불치병 같은 것들이다. 교회 전체에 확산되고 있는 대대적인 배교. 이것은 사탄이 교활한 속임수를 써서 수많은 이들이 복음의 진리를 떠나게 하여 새로운 신학의 허구적 학설을 추종하게 하고 악과 죄를 참된 선 이기나 한 듯 추구하여 거기서 쾌락을 취하게 함으로써 배교의 물결을 도처로 확산 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 ‘나는 너희가 기도에 항구하도록 호소하고 있다. 너희의 나날을 끊임없는 기도로 변화시켜라. 맡김과 신뢰와 인내로서 꾸준히 기도하여라. 언제나 나와 함께 기도하라는 나의 호소를 받아들인 자들만이 구원될 수 있을 만큼, 어렵고 위험한 때가 다가오고 있다.’


- ‘대환란이 너희 모두에게 닥쳐왔다. 사탄의 극심한 위협에 시달리며 악령들에 의해 크게 손상을 입고 있다. 사람들이 이제는 죄를 악으로 간주하지도 않는다. 이다지도 큰 위험 속에서 깊이 병들어 있는 내 자녀들아, 회개와 보속의 길로 주님께 돌아오라는 이 어머니의 간절한 권고를 받아들여다오. 누구나 안전한 피난처인 티 없는 내 성심 안으로 서둘러 들어와야 할 때다. 너희는 큰 시련의 때를 살아가야 하는데 이때 너희를 돕고 지키고 보호하고 위로하면서 새 시대를 준비시키려고 너희 곁에 있는 이 ’엄마‘의 현존을 그만큼 더 특별히 체험케 될 것이다. 이 대환난기가 지나고 나면 크나큰 평화의 기쁨과 성덕의 시대가 오리라.’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성모님을 통하여 성령의 힘으로 온 인류에게 죄를 끊고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호소하십니다. 하느님의 정의의 때가 오기 전에 자비를 이토록 쏟으시면서 우리에게 호소하십니다.


하루하루 회개의 삶을 사는 많은 사람들의 체험담이 이 홈페이지에 나가고 있습니다. 이 분들의 생활은 요한복음 14장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실현되는 증언들입니다.


요한복음 14장: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 분께서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이 말씀이 그분들의 생활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행복을 글과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죄를 끊고 회개하는 누구에게나 이 시대에 이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면서 육안으로 볼 수 없는 하느님의 현존을 믿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도 현실적인 것이기 때문에요.  

하느님께서는 천상의 모두를 총동원하여 우리에게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유일의 길인 회개를 호소하십니다. 우리가 피할 수 없이 오고야 말, 하느님의 정의를 제시하시면서 까지 빨리 회개 할 것을 호소하십니다.


저는 아무리 바쁜 시간에 어떤 곳을 가든지 주차장까지 마련하여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수 없이 체험합니다. 몸이 좀 불편하거나 많이 과로하였을 때는 목적지 바로 문 가까이에, 놀라운 방법으로 주차장을 마련하여 주십니다. 어떤 때 몸이 괜찮을 때도 주차장을 아주 가까운 곳에 어렵게 마련하여 주시기도 합니다. 그때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하느님께서 영광 받으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리기 위하여 그 주차장을 양보하고, 멀리에 차를 세우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행위로 걸어서 갑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힘들 때나 어떤 환경에서도, 이렇게 하느님과 성모님께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매사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이 가운데서는 그치지 않는 기적이 일상생활 안에서 흐르는 물과 같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매사가 기적이며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의 섭리로 엮어진 많은 사랑의 선물을 듬뿍 받으면서 천상의 행복 속에서 삽니다. 고통 속에서도 실망 속에서도요. 나는 고아가 아니라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수시로 상기시켜 주십니다.


회개는 이런 행복, 천상의 행복,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행복에로 우리를 안내하여 줍니다. 이런 체험을 하고 사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물론 회개는 박 엘리자벳씨가 시킨 것이 아니라, 그 분께서 시종일관 강조하시면서 제시하시는 회개에로의 길을 따라 사시는 분들의 수고와, 하느님과 성모님의 작업입니다. 체험하지 않고는 믿기 힘든 하느님의 사랑의 체험담을 여러 사람들로부터 들을 때 마다, 아직도 회개하지 않고 하느님을 떠나 고아로 사시는 분들은 어떻게 이 세상을 단 하루라도 살아갈 수 있나? 생각만 하여도 암담하여 집니다.  


회개의 길을 따라 하느님의 궁전을 향하여 회개의 길 높이 올라갈 때 쯤 되어, 어느 날 깊은 숲 속으로 걸어가게 됩니다. 그 길은 좁고 외로운 길이기도 합니다. 왜냐 하면 감각적으로 느끼고 보던 기쁨이나 맛이나 즐거움을 주던 꽃들도 볼 수 없고, 그 향기도 없으며, 밝은 태양빛도 없이, 다만 깊은 숲만이 앞뒤를 가리운 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작은 길은 이어 집니다. 내가 지금 하느님의 궁을 향하여 앞으로 가는지 뒤로 가는지 옆으로 가는지 조차 의식할 수 없이 사방은 숲으로만 가득 찬 오솔길을 아무 벗도 없이 홀로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렇게 아름답게 들리던 천상의 새소리도, 꽃의 향기도 시냇물 흐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감각은 덤덤하고 지루함도 느끼면서 홀로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것을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고 합니다.


그동안은 영혼은 감각이 주는 맛과, 즐거움과 기쁨 등을 통하여 하느님을 따라 갔지만, 이제 영혼은 이것들에 의존하던 것을 벗어나, 이것들을 떠나 혼자 그러나 직접 하느님을 만나게 되는 길로 들어갑니다. 이때 영혼이 해야 할 것은, 앞을 향하여 똑바로, 항구하고 충실하고 용감하게 그러나 조심스럽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침묵과 기도와 자아 끊기와 겸손의 지팡이를 굳게 짚고, 하느님이 어느 때보다 가까이서 보고 계시고 지켜주신다는 신념을 갖고 느낌에 관계없이 쉬지 않고 계속 걸어가는 것입니다. 영혼은 메마른 듯 덤덤하고 아무 느낌이나 기쁨이 없어도, 죄를 끊는 회개의 작업을 항구하게, 충실하게, 용감하게 하면서 이 숲 속을 향하여 계속 걸어갑니다. 이렇게 이 숲 속을 걸어가는 동안, 많은 덕이 생깁니다. 인내의 덕, 꿋꿋함의 덕, 항구함의 덕,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완성,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겸손의 덕, 자기의 욕과 뜻을 끊는 덕, 순종의 덕, 침묵의 덕, 기다림의 덕, 악을 끊는 덕 등이 많이 생기고, 성장되고 수련이 됩니다. 하느님의 궁전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길은 꼭 거쳐야 하는 길입니다.


이렇게 쉬지 않고 숲 속 안으로 가다 보면 덮였던 숲이 점 점 걷히면서 태양빛을 보게 됩니다. 이 태양빛은 어떤 사물이나 감각을 통하여 비추어 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깨끗한 영혼, 덕이 많이 닦인 영혼들에게만 비추어 주시는 하느님의 빛입니다. 이것을 주부적 관상의 문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숲이 우거진 곳을 거치지 못하고, 뒤로 돌아서서, 감각적으로 자극되고 맛을 주는 체험을 찾아 이곳저곳으로 찾아다니다가, 하느님께 가는 길을 영영 잃거나 재미와 맛이 없다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높이 올라갔던 영혼들이 회개의 길까지 포기하여 아주 불행하게 되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어떤 이들은 감각적인 맛과 기쁨을 찾아  영적 음식을 이것저것 너무 많이 먹어 체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혼의 큰 병이 나게 되어, 그 이상 그 길을 걸을 기력을 잃고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됩니다.


회개는 이 세대에 주는 피난처로만 우리를 이끌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 일치하는 주부적 관상, 즉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 일치 할 수 있는 절정까지 안내하여 주는 길잡이 입니다. 회개는 우리 안에 하느님 아닌 것을 끊어 주는 것뿐 아니라, 그 안에 하느님을 모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여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자리에 들어오시어 우리를 직접 가르쳐 주시고, 안내하여 주시고, 양육하여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의 모습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것을 성화, 또는 하느님을 닮는 거룩한 모습, 또는 천국 시민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회개의 길은 우리를 이렇게 ‘행복의 최고 절정’까지 안내하여 줍니다. 회개는 우리를 가장 완전하고, 가장 안전한 행복에로 이끌어 주는 유일의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느님과 성모님께서는 회개 하라고 끊임없이 부르고 계십니다. ‘너무 늦기 전에 회개 하라’고요.


하느님과 성모님의 이 애타게 부르시는 부르심에 더욱 적극적으로 또 빨리 응답할 수 있는 은총을 우리 모두에게 주시기를 빕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이제와 우리 죽을 때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