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에 자리 잡고 있는 악습은 참 많습니다. 그중에 가장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존심”입니다.

남을 판단 하는 것도, 유익한 충고의 말을 들었을 때도, 진실에 가까운 농담을 들었을 때도..... 그밖에 수많은 자질구레한 일들에서 조차도, 속으로 생각해보고 그리고 예민하게 반응을 일으키곤 했습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예민하고 자존심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을까를 묵상해 본적이 많습니다. 어린시절과, 살아 오면서의 시간들을 되돌아볼때 저의 영혼은 참 여리고 나약했고 주변 환경으로 받은 상처들과 가계의 혈통에서 내려온 악습이 저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취약한 부분을 감추기 위해 자신을 포장해서 완벽하게 보이려고 했고 그로 인해 생기는 부작용으로 미움, 시기, 질투, 상상, 투덜거림, 판단하는 것 등의 악한 열매들을 줄줄이 달고 더 많은 죄를 지었던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빛으로 이끌어 주시지 않았다면 평생을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지으면서 깨닫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릅니다. 기도회 모임에 나가면서 한 자매님의 경험을 통한 가르침과 박 엘리자벳 선생님의 강의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 잘못 살아왔다는 것을 절감하고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늘을 찌르던 자존심을 꺾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였습니다. 결국은 영성체후에 예수님께 매달렸습니다. “예수님, 저의 악습을 치유해주세요. 당신께서 제 자신보다도 저를 정확히 아시니까 당신  뜻대로 치유해 주세요.라고 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기도를 하기 전부터 이미 저를 치유하기 위해 작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크든 작든 제 영혼의 크기에 맞게 기도회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가족들 친구등과  부딪히고 , 또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예수님은 저를 “고통”이라는 큰 은총으로  수술시키고 계셨습니다.

가장 크게 저의 자존심이 타격을 받고 뿌리까지 흔들리게 된 것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남편을 통해서 였습니다. 카드빚, 바람, 외박, 월급조차도 써버리고................제가 가지고 있는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벌어졌을때는 너무도 자존심이 상해서 또 서러움에 많이도 울어보고, 내적으로 황폐해질데로 황폐해져서 급기야 이혼까지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알고 있는 것을 넘어서, 모든 것을 받아드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나를 꺾는 순교의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적인 생각과 하느님의 생각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면서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한번은 너무 고통스러워서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죠세파 복녀에게 주신 ‘십자가의 길’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신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든 그 고통과 저의 고통을 한번 비교해 보겠습니다. 물론 당신의 고통과 저의 고통은 비교될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당신으로부터 위로받고 싶을 뿐입니다”이렇게 먼저 기도를 하고 난후, 십자가의 길을 하는데 제 2처에서 “나를 사랑하는 영혼들아, 나에 대한 너희의 사랑이, 너희가 지금 받고 있는 고통보다 더 큰지 비교해 보아라. 너희의 실망과 지침의 고통을 통해서, 너희에게 보내는 나의 사랑의 불꽃을 끄지 않도록 하여라.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그 순간 놀랬습니다. 제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이 일치한 순간 이였다는 느낌이였고 예수님께서 제 옆에 계셨든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 조금한 고통도 참아내지 못하고 힘든다고
아우성을 쳐서 예수님께 너무도 죄송하고 ,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희망을 가집니다. 지금은 위로받고 있지만, 언제가는 고통 받으시는 예수님을 위로해 드릴 것이라고요.

일일이 나열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각도의 조그마한 고통들을 통해서 저는 나의 자유의지에서가 아니게, 예수님의 수술대에서 어쩔수 없이 “자존심”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부산물로 따라오는 악한 열매들도 시들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꽂혔있든 이상한 판단의 대상도 불쌍해 보이고 잘해주고 싶었고, 남편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진심어린 사랑으로 대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영혼의 성장을 위해서 고통은 필요한 것인데 억지로 받아들이지 말고 즉시 받아드리기 위해서  “자존심”을 끊어버릴수 있는 방법은 이미 박 엘리자벳 선생님의 “자애심”에 대한 강의 말씀을 통해 배워 알고 있었습니다.

늘 들어오던 방법인데도 실천을 게을리 했습니다. 양심성찰도, 묵상도 꾸준하게 하지 못했었고 정해진 시간에 하지도 못했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신뢰는 “항구한 기도”에 있다는 말을 들었고 알고 있는데, 자유의지로 노력하는 것이 부족했습니다.

지금부터 노력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순종하고, 겸손의 행위도, 그리고 죄를 끊도록 하겠습니다. 내일은 생각하지 말고 죄를 피하기 위해 하루를 최선을 다 해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