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죄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안에서 살기 위하여서는 모든 죄들, 대죄와 소죄들로부터 정화 되야한다.


대죄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한다. 소죄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단절 하지는 않지만 약화 시키고 느슨하게 만든다.


소죄는 세상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람들이나 수도원에서 잘 어울려서 산다. 이들에게 대죄는 무서워 피하지만 소죄에 대하여는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리 중요하게도 생각 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들에게 더욱 위험한 독이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진보 하느냐 후퇴하느냐는 소죄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깊이 달렸다.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 그것은 소죄에 불과하다’ 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적은 거짓말, 선의를 위한 흰 거짓말, 이웃을 해치고는 그리 큰해가 아니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것들‘....등이다.


고의적인 소죄는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안에 흘러 들어오는것이나 우리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성장하는것을 방해하고 하느님께로부터 보상을 받는것을 지연시킨다. 그래서 우리 영혼은 하느님께로부터 은총과 축복을 받을수 있게 하는 태도에서 게을러지고 그 대신 죄에 마음을 열게 된다. 이것이 점점 깊어 지면서 소죄를 짓는것이 습관이 되어 버린다.


우리의 판단력은 점점 흐려지고 믿음은 약해지고 본성과 본능이 고개를 들고 이러나서

점점 이 사람을 지배하게 된다. 그러면 하느님께 대한 마음과 열정은 식어지고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것은 기억에서 사라진다. 이제 고의적인 소죄를 짓는것은 습관이 되어서 죄라는것 조차 의식 못한다.


이쯤 되면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기분과 성질 나는 데로 화를 쉽게 내고 신경질을 내고 소리를 지르고 한다. 인내심이 없고, 자신의 판단이나 생각이나 말에서 사랑이 없다. 말을 조심하지 않고 감정과 기분이 움직이는 데로 자애심과 용서하지 않는 말들을 내뱉는다. 수다스럽게 되어 다른 사람들의 이름이 손상되는 일들이나 평판에 대하여서 경솔하게 다루며 마구 지꺼린다.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않고 그 이외에도 많은 소죄들이 악습이 되어 그것들을 달고 산다.


이렇게 죄를 짓다가 고백성사를 볼때는 잘못을 고백 하거나 잘못한것을 인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죄들에 대한 통회와 그 뿌리를 뽑으려는 결심이 굳지 않아서 똑같은 악습으로 돌아 간다. 이것들이 자기 목을 메고 있는 연자맷돌이라는것을 모른다. 자기 목에 걸린 이 소죄들의 연자 맷돌의 무게로 자기 영혼이 얼마나 빨리 빠지고 있다는것을 모른다. 고백성사에서 받은 은총을 이용하여 이 소죄들의 악습을 끊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이것을 하지 않거나 소홀이 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남용하는것이다. 이 결과로 영혼은 점 점 더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져 간다. 


전에 열심 하였을때 느꼈던 하느님의 사랑이나 관계가 이제는 먼 옛날이 되어 버리고 다시는 찾을수 없게 된다. 이제 하느님께서 자기를 사랑하고 계시다는것 조차 느끼지 못한다. 이제 하느님에 대하여 더 무관심하게 되고 하느님과의 관계는 미지근한 상태에서 찬 상태로 되어 가고 있다. 이제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긴듯 이제 하느님과 관계 없이 혼자의 힘으로 산다. 영혼은 점 점 더 본성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게 되고 교만하게 된다. 이제 하느님과 자신 사이에 무엇인가 들어와 꽉 자리를 잡고 있어 하느님과의 관계가 막혀지는것 같다.


이것이 영혼들이 소죄를 통하여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는 보통 과정이다. 또 영혼이 습관적인 소죄들 때문에 파괴되는 일반적인 역사이다. 


                                   (Benedict Baur 저  In Silence with God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