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태오 10장 29절)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왜 우리는 무엇이 부족할까를 두려워 하는가?  만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부족한 상태로 버려 두신다면 이는 우리로 하여금 고통을 통해 완전하게 하시려는 뜻에서이다.  우리에게 닥쳐오는 역경, 혼란과 유혹, 질병이나 하느님과의 사귐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로부터 완덕을 향한 노력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라 하누님 의 영광과 아버지의 뜻만을 찾으면서 역경을 견뎌내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 영혼은 하느님 안에 잠기게 되고 그분 안에서 모든 안식과 만족과 기쁨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완전함으로 나가야 한다. 하느님의 길은 인간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길과는 다를 때가 종종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자신을 거룩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느님은 고통을 통해 그것을 이루고자 하신다.  아!  나는 언제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모든 걱정에서 벗어나 내 자신을 순순히 하느님의 안배하심에 맡길 수 있을까?  나에게 무슨 일이 닥쳐올까하고  염려 하는 것은 내게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우리는 빈곤과 고통을 두려워하는 본성을 말살 시켜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총칼에 쓰러져 순교자가되고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를 포기하고 큰 사랑으로 인해서 순교자들이 된다.  이 순교는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때때로 외적 순교보다 더 고통스럽다.  그것은 재산이나 영예, 건강이나 생명의 위험을 참아 받는 것들이며 병과 재난과 가난....  그 밖에 다른 곤궁들이 어디에서 오든지간에 기도를 통해 자신을 완성시켜 간다. 또 내적 고통을 통해 완독으로 인도되는 영적 순교자들이 있다. 자기에 대한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깨닫고 성실한 모든 이는 참으로 복되도다!


만일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 하느님과의 결합이 중단 되었다면 오랫동안 불안 속에서 고통스러워 하지 말고 즉시 하느님께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불안은 대부분 영적 교만과 잘 드러나지 않는 이기심에서 오는 것이므로 이때 우리는 스스로에게서 헤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이러한 것은 주님과의 친교가 정지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합은 원래 사랑을 내포한다. 사랑은 결점을 없애주고 영혼을 다시 그분의 안식으로 이끌어준다.


                                           ------   요안느 베르니에 루비니 '하느님 안에 숨은 생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