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합시다.


오 지존하신 천상 아버지, 만유의 창조주이시고,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인류의 창조주이신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의 원천이시나이다.

저희는 아버지를 흠숭하나이다. 아버지께 영광드리나이다. 주님,

죄인들인 저희를 용서하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지극히 사랑하올 예수님, 저희는 당신을 흠숭하나이다. 영광 드리나이다. 사랑하나이다. 이 글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위로 받으소서, 사랑받으소서.


성령님이여, 이 글을 통하여 많은 이들의 마음을 주관하시어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소서. 

아멘.


저는 자주 이런 이야기를 듣고 저도 그것으로 한때 회답을 찾지 못하여 혼동 되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 미래까지 모두 알고 계시며 우리가 언제 어떻게 죽는다는 것도 아시는데 왜 우리가 기도 할 필요가 있느냐?........'


자신들에게 물어 보십시오. 이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시는지요? 이것을 운명론 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정답은 저는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배웠습니다.


맞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과거, 현제 미래까지도 아주 세밀히 그리고 온전히 아십니다. 우리가 언제 교통사고 위험이 있을 것이고, 언제 무서운 병에 걸릴 것이고 언제 거짓말을 하였고 언제 도둑질, 사기, 살인 할 것도 환히 아십니다. 우리의 생각의 그림자 까지 아십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의 뜻과 그분의 이끄심 대로 살지 않으면 이런 것들을 모면하지 못하고 살아서 많은 경우에 죄의 구렁텅이로 한없이 깊이 빠져 드디어 지옥의 영원한 불바다 속으로 떨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인류가 어려움이나, 환란 ,시련기가 오기 전에 그것들로 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말씀도 주시고, 경고도 주시고, 벌을 주시면서라도 그 고통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온갖 방법을 다 제시 하십니다.


그러나 최종적 결정은 인간들 각자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고 또 결정합니다. 우리들의 운명은 바로 우리가 정하여 만든 운명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위에서 말 한대로 하느님께서는 전지하심으로 이 세상 어느 작은 구멍에서 움직이는 것 까지, 그리고 과거와 미래를 다 보시고 다 아십니다. 이것은 하느님이 그렇게 전지 하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우리의 인생을 고정 시켜 놓으셨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다만 아시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운명은 인간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과 천사들을 창조 하시는 순간 '자유 의지'를 주신답니다. 즉 우리 인생에 대한 결정권을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도 이렇게 주어진 자유 의지를 박탈하시거나 침범하지 않으십니다. 각자 개개인만이 자기의 인생을 결정할 결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자가 자유선택을 하며 이에 따라 그들의 영생이 (운명)이 결정 된다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앞으로 닥칠 불행을 아시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 하여 주시기 위하여 당신의 말씀을 (메시지) 통하여 그것에 대한 지식을 주시거나, 때로는 징벌을 주시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불행을 모면하도록 인간들에게 제시하여 주시고 자유의지에 영향을 주시면서 바른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십니다.


이런 목적으로 하느님과 성모님께서 주시는 말씀(메시지)등을 받아드리고 거부함에 따라 우리의 운명 크게 그리고 영생에 까지 달라지는 것입니다.


어느 사람이 별안간 큰 불운에 떨어졌을 때 하느님부터 원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자신에게 문의 하여 봅니다. 그동안 하느님께서 이 불운에 떨어지지 않도록 계속 나의 자유 의지에게 신호를 주셨을 텐데 과연 나는 경청하고 그대로 살았는지?


그러므로 이 시대에 주시는 하느님과 성모님의 말씀이 얼마나 중대한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 하여 볼 때가 아닌가 생각 됩니다. 


이 시대에 사탄과 마귀들이 최악의 발악을 하면서 영혼들을 불행, 영원한 불행으로 이끌고자 인간의 눈으로 보이지 않은 그들의 수많은 그물을 쳐 놓고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유혹으로부터 어떻게 구원될 수 있고 어떻게 그들과 싸워야 하는지 많은 영성가 들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성 그레고리는 말하기를 사람들은 큰 유혹을 당하면 즉시 모든 것이 망했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버리시고 은총을 거두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신다.  그것은 큰 착각이다.


유혹자는 우리가 죄에 빠지고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유혹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하시어 경험을 얻게 하시고 영혼을 꿋꿋하게 하시고 하느님께 더 가까이 하게 하시기 위하여 시련을 허락하신다.


복된 성 안토니오는 영적싸움과 시련과 싸우는데 대한 지식과 경험이 많으신 성인이다. 그 분께서 말씀하시기를 유혹자를 정복하는데 중요한 방법 중에 하나는 시련 중에 용기와 꿋꿋함과 명랑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 함으로써 유혹자가 우리를 해칠 수 있다는 희망을 잃고 즉시 물러가게 하기 위해서다.


성 이그나시오는 말씀하시기를 유혹자가 우리에게 시련을 줄때, 남자와 싸우는 여자처럼 행동한다고 한다. 남자가 덤벼들 기세를 보이면 여자는 즉시 싸우려는 기세를 가라앉히고 돌아서서 도망간다.


그러나 남자가 겁을 집어 먹고 우물쭈물 하면 어찌나 기세가 등등 하게 덤벼드는지 그렇게 사나운 동물이 이 지상에 없다. 우리가 겁을 내는 기색을 보이면 유혹자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용기 충천하여 덤벼드는 호랑이가 된다.


우리가 명랑해지면 유혹자는 그것을 보고 뼈 저리는 고통을 느낀다. 그 반면에 우리가 슬퍼하고 겁을 집어 먹으면 유혹자는 매우 기뻐한다. 그래서 시련을 받을 때 우리는 용기를 내고 명랑한 얼굴을 보이면 유혹자는 더욱 약이 올라 한다.


유혹을 물리치는 방법


1. 유혹을 받거나 시련 중에 용기를 갖고 꿋꿋함과 힘을 내며 명랑함을 갖는다.

   

2. 두려워하지 말 것.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우리가 유혹자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필요한 모든 은총을 주신다. 

그래서 하느님을 신뢰하고 기도하면서 용감하게 싸운다.


3. 우리가 유혹을 받을 때나 시련을 당할 때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시고 

주신다는 것을 신뢰할 것.   


4.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힘에 겨운 유혹은 허락하시지 않으신다. 유혹의 힘이 강해지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도움과 은총도 그 만큼 더 강하고 크다.


5. 시련 때는 죄를 짓지 말고 오직 하느님의 뜻대로 행동하도록 노력한다. 기도, 겸손, 보속, 단식을 하 면서 성모님과 구품천사들과 성 미카엘에게 기도 한다.


6. 시련기나 유혹시기에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이것은 유혹을 정복할 수 있는 강한 무기이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고 신뢰한다.


7. 유혹을 당할 때 즉시 이에 정 반대 되는 덕행을 행동하며 대항하여 싸운다. 격정은 침착으로, 투덜 거림은 침묵으로, 교만과 거만은 겸손으로, 미움은 용서와 사랑으로.  


8. 유혹을 시초에 물리친다. 기다리지 않는다. 기다리면 유혹자의 힘의 뿌리가 깊어지고 대항해 

싸우기가 힘들어 진다.

      

9. 한가하지 말 것.

    성 안토니오에게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마귀에게 네가 항상 바쁘다는 것을 보여라’고  


10. 깨어 기도하고 단식 하여라.

    기도를 그치지 말고 자신을 끊는 수련과 보속의 힘을 강화 하여라.


11. 선의 형태로 오는 유혹의 정체 분별

   

유혹자는 덕행과 완덕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유혹할 때는 빛

의 천사나 선의 형태로 가장하고 유혹한다. 성 보나벤추어는 말하기를 유혹자는 처음에 

이런 영혼들에게 좋은 것을 제시하고 그것을 하도록 유혹한다. 

그 다음 그 선을 악한 것과 섞는다. 그 다음 악한 것을 좋은 것으로 즉 선의 형태로 제시한다.


그 다음 자기의 정체와 독성을 드러내 보이고 영혼을 공공연히 죄를 범하게 한다. 유혹자는 이런      방법으로 진보된 영혼들을 무수히 쓰러뜨리거나 하느님으로부터 후퇴하게 하거나 깊은 구덩이에     빠뜨린다.


이런 유혹을 물리치는 방법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분별할줄 아는 경험과 지식이 있고 기도하는 거룩한 영적 지도자의 도움과 그에 순명함이 중요하다고 한다.


12. 악한 생각이나 음란한 생각으로 유혹을 당할 때나 추잡한 생각 또는 신앙에 거슬리는 생각이 떠오를 때 사람들은 죄를 짓는 줄 알고 고민한다. 그 생각에 동의 하지 않는 한 그것은 죄가 아니며 다만 스쳐가는 생각일 뿐이다.


이런 경우에는 이런 생각들을 없애버리려고 애쓰려고 에너지를 소모하지 마라. 없애도록 노력은 하되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이렇게 억지를 쓰는데서 오는 손해가 유혹에서 오는 손해 보다 더 크다. 이것은 참으로 조심해야 할 것이며 특히 소심한 사람들은 신경이 너무 예민해 지고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자신의 세심과 소심증과 무분별로 더 큰 해를 입게 된다.


이런 유혹을 물리치는 방법은 기진맥진하며 자기의 상상력을 난폭하게 취급하면서 유혹을 물리쳐 버리려 노력할 것이 아니라 모르는체하고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다른 일에 정신을 집중하고 이 나쁜 생각들에서 마음을 다른 곳에 몰두 하여라. 그러면 그 생각이 없어진다. 무시하여 버려라.


13. 유혹의 종류에 따라 그 물리치는 방법도 다르다.

 

14. 하고 있던 영신 작업, 예를 들어 기도, 단식, 미사, 고백성사를 보는 것을 절대로 약화 시키지 말고 늘리면 늘렸지 줄이거나 멈추지 말 것.


유혹자는 바로 이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이런 신심행위를 약화 시키고 못하게 막고자 하는 것이 유혹자의 목적임으로 우리가 조금이라도 이 면에서 주저하거나 단축하거나 불충실 하면 유혹의 힘은 더욱 기세를 부리고 달려들어 더 큰 유혹의 힘으로 공격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유혹자를 대항해 싸울 힘이 없어지고 사정이 더 악화 되어 드디어는 유혹자가 삼켜 버린다.


15. 잘 분별하고 성찰해 유혹의 정체를 알아내고 그에 따라 싸워 물리치도록 적절한 방법과 무기를 이용한다. 우리를 유혹하려는 것을 역 이용하면 유혹자를 이길 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예로, 교만할 때 겸손의 행위, 투덜거림의 유혹이 올 때 침묵, 기도가 약할 때 기도의 양을 늘림, 사람과의 관계 절제, 행동의 절제, 말의 절제등...........


유혹과 시련을 통하여 얻는 유익


1. 우리의 죄를 깨닫고 그 죄를 끊은 작업을 하게 된다.


2. 사람들은 시련을 통하여 하느님 앞에서 정신을 차리게 된다.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하느님의 도우심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어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께 의뢰하게 된다.

  

3. 의인은 시련 중에서 더 강해지고 더 많은 덕에 진보 되고 덕의 뿌리가 깊이 내려 더 거룩하게 된다.

      

하느님을 참되게 사랑하는 이들은 시련이 닥쳐올 때 유혹자의 공격이 많이 닥칠수록 덕을 보존하고 유혹을 물리치려 노력한다. 새로운 결심을 더욱 굳게 한다.

 

4. 유혹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나아감을 더욱 열심히 하고 근면하게 한다. 즉 자기네들의 영성생활에서나 신심생활에서 더 열심히 하게 되고 꿋꿋하고 용감하게 되며 항상 깨어 있게 된다.


5. 하느님께 진보하는 사람들은 유혹을 당할 때 슬퍼하지 않는다.   성 도로테우스는 유혹을 영적 잔디 밭’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시련이나 유혹을 거두어 가시라고 기도하지 않았고 그것을 정복할 수 있는 은총을 구하였다.


6. 유혹과 시련은 우리를 많은 죄와 악습에서 정화시킨다. 자신 뿐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익을 주고 정화하게 한다. 하느님의 정의를 체험하게 되고 죄인들을 다루시는 하느님의 준엄하신 모습도 보게 되어 회개하게도 된다.


7. 하느님께 대한 거룩한 두려움이 커진다. 그래서 죄를 더 적극적으로 피하고 자신의 뜻을 꺾는 자아 끊기 덕이 성장하고 순명의 덕이 성장한다. 그 이외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익이 있다.


기도 합시다.


항상 저희 곁에서 저희를 위하여 기도 하여 주시고 보살펴 주시는 천상 어머니, 이 글을 접하는 모든 이들을 당신의 티 없으신 성심께 맡기오니 천국 가는 그날까지 지켜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