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이사를 가려고 집을 내 놓았다.  남편에게 집을 팔고 빚을 청산하면 돈이 얼마나 남느냐고 물었더니 머뭇거리다 어쩔 수 없어 대답을 해 주었다.  그 금액으로는 수도권에서는  전세는 고사하고 보증금에 월세를 살아야 할 정도의 금액 밖에는 되지 않았다.  순간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무게의 절망감을 느꼈다. 하루 종일 집안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제대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마음 속으로는 지나간 고통스러웠던 일들만 주마등처럼 떠오르면서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인간적으로만 되짚어 보다가 영적 일기를 쓰게 되었다.


‘나의 하늘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불현듯 들었고 ‘내가 매일 기도하고 의지 했던 예수님과 성모님 이었을까?’ 하고 깊이 묵상해 보았는데 나에게 있어서 하늘은 ‘안락한 삶’ 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속적으로 지내왔던 가정생활이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남편은 실직일 경우가 많았고 빚은 많고 건강은 자신 할 수 없는데다가 이제 집마저 팔아버리면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이렇게 불 보듯 뻔한 현실 앞에서 어찌 초연하기만 할 수 있나를 생각하면서 착잡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일 미사를 참례 하였다. 


복음말씀 중에 내 마음에 비수처럼 와 닿는 부분이 있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섬길 수 없다’는 대목이었다. 그래도 나는 앞으로 주어질 현실에 더 마음이 쓰여 기도에 집중이 되지도 않았고 여전히 안절부절 못하는 상태로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요즈음 읽고 있던 개신교 신자 ‘웨인 와이블’ (후에 카톨릭으로 개종함)이 쓴 ‘메주고리예’ 가 눈에 들어왔고 읽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지난번 읽던 부분부터 일기 시작했다.  64페이지에 성모님께서 ‘이곳을 택한 이유는 특별하다. 이 지역을 찾아오는 순례자들에게 변화의 삶을 직접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라고 하시면서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34절까지의 말씀도 잘 읽어보고 그 참뜻을 참고 하라고 전하셨다. 라고 쓰여 있었다.   이 부분까지 읽고서는 그 말씀을 읽어보고 싶어서 성경을 펴고 보고서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같은 날 주일미사 때의 복음 말씀과 똑같은 내용이 아닌가?


왜 하필 지금 늘 있어왔던 성경말씀 가운데 마태복음을 읽게 되었고 주일미사 복음말씀과 일치할 수 있었는지에 놀라울 수 밖에 없었다.  순간 말씀이 살아서 움직임을 느꼈다.  성모님께서 지나갈 이 세상 것에  집착해 너무 슬퍼하는 나를 보시고 나에게 직접 메시지를 주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모님께서 조그마한 사건을 통해 내 자신의 진면목을 다시 보게 해 주신 것이었다.


나의 하늘이 ‘안락한 삶’이었다는 것을 묵상에서 깨달은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모님께서는 ‘안락한 삶’은 바로 우상숭배이니 내가 숭배했던 우상을 버리고 하느님만을 선택해야 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주신 것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동안 아주 교묘하게 안락한 생활이 유지되면서 그 생활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에서만 예수님도 존재 했었고 성모님도 나에게 존재 했었던 것을 깨달았고, 마지막 남은 집이라는 안락함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나는 세속적으로 안주했던 대상에 애착을 벗어버리기가 싫었던 것을 깨달았다.  이제 나는 변화되어야만 한다. 메주고리예에서 성모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대로 똑같은 삶은 살 수 없다고 다짐의 다짐을 새롭게 했다.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예수님, 성모님.!!

이렇게 보잘 것 없고 길가의 돌멩이만도 못한 죄인을 일깨워 주시고 변화시켜 주시려고 동분서주 하시니............!!!     그 은혜에 사랑과 자비를 되돌려드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앞으로 남은 저의 생애동언 당신들께 거저 받은 사랑을 희생과 기도와 보속의 삶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아멘.